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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과 애도의 기록 『호피무늬 모자』(안 세르 지음, 송원경 옮김, 문학동네)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종후보에 오른 프랑스 현대문학의 목소리

장세환2026년 6월 5일 오후 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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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피무늬 모자.jpg출판사 제공

프랑스 작가 안 세르의 장편소설 『호피무늬 모자』가 한국어판으로 출간됐다. 이 작품은 2025년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종후보에 오르며 세계 문단의 주목을 받은 소설로, 자살한 동생을 기리기 위해 쓰였다는 점에서 더욱 깊은 울림을 준다.

소설은 정신질환을 앓다 세상을 떠난 ‘파니’와 그를 기억하는 친구 ‘화자’의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화자는 파니와 함께했던 순간들을 세세하게 떠올리며, 그가 남긴 내면의 풍경을 기록한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는 파니의 모습은 단순한 개인의 이야기를 넘어, 인간 존재의 불가해함과 타인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거리감을 보여준다.

작품 속 파니는 늘 두 가지 얼굴을 지닌 인물로 등장한다. 무기력과 고통 속에 침잠하다가도, 호피무늬 모자를 쓴 여인처럼 갑작스러운 생기를 드러낸다. 화자는 그 변화에 놀라움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며, 사랑과 우정, 헌신과 불안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린다. 이 긴장감은 독자에게도 강렬한 감정적 체험을 제공한다.

『호피무늬 모자』는 단순히 한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는 기록이 아니다. 화자는 파니를 이해하기 위해 끝없이 질문을 던지지만, 결국 완전히 닿을 수 없는 거리 앞에서 좌절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기억을 통해 파니와 다시 연결되려 한다. 이 과정은 상실을 겪은 모든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건넨다.

문학적 실험도 돋보인다. 안 세르는 ‘화자’라는 존재를 전면에 내세워, 이야기하는 자와 이야기되는 자의 관계를 집요하게 탐구한다. 독자는 화자의 시선을 통해 파니를 만나지만, 동시에 그것이 진짜 파니가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처럼 서술의 불완전성과 타인의 불가해함을 드러내는 방식은 현대문학의 중요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출간 이후 평단의 반응도 뜨겁다. 인터내셔널 부커상 심사위원단은 “삶과 죽음의 연약함을 양손으로 소중히 받들고 있는 소설”이라 평했으며, 미국과 영국의 주요 문학 매체들도 “타인의 불가해함을 탐구하는 작품”이라며 높은 평가를 내렸다.

국내 출간을 맡은 문학동네는 “소중한 사람을 잃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하는 작품”이라 소개하며, 한국 독자들에게도 애도와 기억의 문학적 힘을 전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호피무늬 모자』는 얇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무게감 있는 서사로 가득하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후 남겨진 자가 어떻게 그 빈자리를 존중하고 기억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 작품은, 상실과 애도의 문학적 기록으로 오래도록 회자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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