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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너머의 박경리를 다시 읽다, 『애가』 리커버 특별판 출간(박경리, 다산책방)
사랑과 욕망, 결혼 밖의 여성들…박경리 첫 장편소설의 낯선 현재성
출판사 제공
박경리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초기 장편소설들을 새 감각으로 다시 읽는 특별 리커버 프로젝트가 출간됐다. 다산책방은 『김약국의 딸들』, 『애가』, 『표류도』를 묶은 ‘박경리 큐레이션 리커버’ 시리즈를 선보이며, 그 가운데 박경리의 첫 장편소설 『애가』를 새 표지와 함께 다시 펴냈다.
이번 프로젝트는 『토지』로 대표되는 거대한 민족서사 너머, 사랑과 욕망, 여성의 내면을 탐구했던 또 다른 박경리 문학을 조명하기 위해 기획됐다. 다산책방은 이를 “이 시대의 낭만성”이라는 키워드 아래 재구성했으며, 현대적 감각의 일러스트 리커버를 통해 젊은 독자들에게 새로운 방식으로 다가간다.
『애가』는 1958년 신문 연재로 발표된 작품이다. 전쟁 이후 혼란한 시대를 배경으로 한 남자와 두 여자, 또 두 남자와 한 여자의 어긋난 사랑을 중심에 둔다. 그러나 단순한 멜로드라마에 머물지 않는다. 박경리는 당시 대중 연애소설이 사랑을 결혼과 행복으로 귀결시키던 문법을 비틀며, 사랑과 욕망, 결혼과 여성의 삶을 훨씬 복잡하고 불안한 문제로 끌고 간다.
소설 속 여성들은 사랑을 원하지만 사랑에 종속되지는 않는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누군가의 아내’가 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무엇을 욕망하는지 끝까지 마주하는 과정이다. 박경리는 당시 사회가 여성에게 강요했던 순종적 역할과 이중적 성 윤리를 정면으로 건드리며, 사랑조차 개인의 고독과 선택의 문제로 바라본다.
특히 작품은 결혼을 사랑의 완성으로 그리지 않는다. “우리는 진실했다. 그러나 그 진실의 결과는 악이 되고 말았다”는 문장처럼, 인물들은 사랑의 진실성과 현실 사이에서 흔들린다. 누군가는 사랑을 잃고, 누군가는 죄책감과 고독 속에 남는다. 그러나 그 감정들을 선악의 문제로 단순화하지 않는 점이 『애가』의 특징이다.
이번 리커버판은 텍스트뿐 아니라 시각적 재해석에도 공을 들였다. 일러스트레이터 최산호 작가가 참여해 화사하면서도 어딘가 쓸쓸한 색감으로 박경리 문학 특유의 양가적 정서를 담아냈다. 사랑과 비극, 생명력과 결핍이 공존하는 인물들의 감정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시각화했다는 평가다.
추천사를 쓴 소설가 김희선은 “좋은 소설은 시대를 살지 않는다”며 『애가』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새롭게 읽히는 이유를 설명한다. 여성의 욕망과 사랑, 고독과 선택이라는 문제들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질문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926년 경남 통영에서 태어난 박경리는 『김약국의 딸들』, 『시장과 전장』, 『파시』 등을 거쳐 한국문학사의 기념비적 작품 『토지』를 완성한 작가다. 그러나 이번 리커버 프로젝트는 거대한 역사서사 이전에도 이미 박경리 문학 안에 사랑과 인간 존재를 향한 치열한 탐구가 자리하고 있었음을 다시 보여준다.
『애가』는 오래된 연애소설이 아니다. 오히려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람은 왜 끝내 살아가려 하는가를 묻는 현재형의 소설에 가깝다. 박경리가 오래전에 시작한 질문은 백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독자들의 마음 한가운데로 돌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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