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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죄와 기억을 파헤친 거대한 숲”, 『내려가라, 모세여』 출간(윌리엄 포크너·조호근, 서커스출판상회)
노예제의 그림자와 미국 남부의 상처를 꿰뚫는 포크너 문학의 정수
출판사 제공
미국 문학의 거장 윌리엄 포크너의 대표작 『내려가라, 모세여』가 서커스 세계문학 시리즈로 국내에 새롭게 출간됐다. 『소리와 분노』, 『압살롬, 압살롬!』 등으로 잘 알려진 포크너는 미국 남부의 역사와 인간 내면의 죄의식을 독창적인 문체와 구조로 그려낸 작가다. 이번 작품은 그중에서도 가장 깊고 장엄한 세계를 담아낸 연작 장편으로 평가받는다.
『내려가라, 모세여』는 서로 독립적으로 읽히는 7편의 이야기가 하나의 거대한 연대기를 이루는 작품이다. 남북전쟁 이후 미국 남부를 배경으로, 매캐슬린 가문의 혈통과 기억, 노예제의 죄와 인간의 탐욕, 자연과 문명의 충돌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작품 속 인물들은 세대를 건너 반복해서 등장하고, 시간은 직선처럼 흐르지 않는다. 과거의 죄는 현재를 잠식하고, 기억은 살아 있는 사람들 위에 끊임없이 그림자를 드리운다.
특히 이 작품의 중심부를 이루는 중편 「곰」은 미국 문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자연 서사 중 하나로 꼽힌다. 어린 아이크 매캐슬린이 전설적인 곰 ‘올드 벤’을 추적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단순한 사냥 이야기에 머물지 않는다. 인간이 자연과 대지를 소유하려 했던 오만, 노예제와 착취 위에 세워진 미국 남부의 역사, 그리고 그것을 물려받은 후손들의 죄의식까지 거대한 상징으로 응축돼 있다.
포크너는 이 작품에서 “그 땅은 애초부터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는 선언을 통해 미국 사회의 도덕적 기반 자체를 되묻는다. 땅과 재산, 혈통과 권력은 결국 폭력과 착취의 역사 위에 놓여 있으며, 인간은 그것을 상속받은 순간부터 죄의 기억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번 한국어판은 포크너 특유의 복잡한 구조를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매캐슬린 가문의 계보도와 아이작 매캐슬린의 연보를 함께 수록했다. 작품마다 서로 다른 시기의 인물들이 교차 등장하고, 백인과 흑인 혈통의 관계가 세대를 거쳐 얽히는 만큼 독서의 길잡이 역할을 하도록 구성했다.
포크너는 194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며 “작가는 사랑과 명예, 연민과 희생 같은 인간 내면의 진실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내려가라, 모세여』는 그 문학적 신념이 가장 거대한 규모로 구현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뉴욕타임스는 이 책을 두고 “한 시대와 대지가 품은 죄와 구원의 역사를 통째로 길어 올린 작품”이라 평했고, 문학평론가 해럴드 블룸은 수록작 「곰」을 “멜빌의 『모비 딕』에 필적할 미국 문학 최고의 중편”이라고 극찬했다.
오늘날에도 이 작품이 강한 울림을 남기는 이유는 분명하다. 포크너가 바라본 인간의 욕망과 폭력, 인종과 권력의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내려가라, 모세여』는 한 가문의 몰락을 넘어, 인간이 역사와 죄를 어떻게 짊어진 채 살아가는지를 묻는 거대한 문학적 증언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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