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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온 시간, 아직도 길 위에 서 있다』 출간(하영순, 아이리치코리아)

낯선 병동에서 버틴 시간, 한국 현대사의 뿌리가 되다

장세환2026년 5월 12일 오후 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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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온 시간, 아직도 길 위에 서 있다.jpg출판사 제공

1960년대 독일로 향한 파독 간호사들의 삶을 기록한 회고록 『지나온 시간, 아직도 길 위에 서 있다』가 출간됐다. 이 책은 1966년 독일로 건너간 파독 간호사 1기 하영순 씨의 생애를 중심으로, 전후 한국 사회와 해외 노동 이주의 역사를 함께 담아낸 기록이다.

저자 하영순은 경남 창녕에서 태어나 서울여자간호대학을 졸업한 뒤 스물세 살의 나이에 독일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후 병원 간호사 생활을 거쳐 사업가와 재독 한인사회 리더로 활동하며 60년 가까운 시간을 독일에서 살아왔다.

책은 단순한 개인 성공담보다, 가난했던 시대를 건너야 했던 여성 노동자들의 현실에 더 가까이 다가선다. 낯선 언어와 문화, 병동 노동, 향수병과 외로움 속에서도 가족과 고국을 위해 버텨야 했던 시간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우리는 가장 낮은 자리에서 시작한 외국인 노동자였지만, 동시에 한국을 대표하는 사람들이었다”라는 문장은 당시 파독 간호사들의 현실과 자부심을 함께 보여준다. 또 “화장실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숨을 고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는 대목에서는 타국 병동에서 견뎌야 했던 노동의 무게가 생생하게 드러난다.

책은 파독 간호사들의 삶을 미화하지 않는다. 고된 노동과 차별, 외로움뿐 아니라 스스로 생을 마감한 동료들의 이야기까지 담아내며, ‘작은 천사’라는 수식어 뒤에 가려졌던 시대의 상처를 기록한다. 동시에 같은 언어와 음식을 나누며 서로를 붙들었던 한인 사회의 연대도 함께 비춘다.

후반부에는 간호사 생활 이후 수출입업과 면세점 사업에 뛰어든 과정, 재독상공인총연합회 회장과 대한노인회 독일지회장 등으로 활동하며 한인 사회를 이끌어온 시간도 담겼다. 한 사람의 회고록이면서 동시에 한국 산업화와 이주 노동의 역사, 재독 교민 사회의 성장 과정까지 함께 읽히는 이유다.

출판사는 “한강의 기적 뒤에는 이름 없이 외화를 벌어들인 파독 간호사들의 희생이 있었다”며 “이 책은 지나간 시간을 추억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오늘의 세대에게 삶의 태도를 묻는 기록”이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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