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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슬립으로 다시 쓰는 식민지 여성의 삶, 『꽃 피는 시절』 출간 (양솽쯔, 마티스블루)
1920년대 타이완을 배경으로 여성 연대와 정체성을 그린 역사·백합 소설
출판사 제공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사람들은 흔히 더 강했던 시기나 영광의 순간을 떠올린다. 그러나 『꽃 피는 시절』은 타임슬립의 도착지로 일제강점기 타이완의 일상을 선택한다. 이 소설은 현재를 사는 인물이 과거의 식민지 사회로 들어가며 마주하는 삶의 조건과 관계를 중심에 둔다.
양솽쯔의 장편소설 『꽃 피는 시절』은 1920년대 타이중의 유력 가문 ‘지여당’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미국 교포 출신의 대학생 양신이는 타임슬립을 통해 여섯 살 소녀 양쉐니로 다시 태어나고, 식민 통치하의 타이완 사회와 가문의 질서 속으로 편입된다. 익숙했던 가치와 언어는 더 이상 통하지 않고, 신이는 새로운 이름과 역할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한다.
이 작품은 역사소설의 형식을 취하면서도 여성 서사를 중심에 둔다. 가문의 딸로 태어난 쉐쯔를 비롯해, 혼인과 혈연, 계급에 따라 서로 다른 삶의 경로를 강요받는 여성들의 일상이 서사의 축을 이룬다. 학교와 직업, 사랑을 둘러싼 선택지는 남성 인물보다 훨씬 제한적으로 제시되며, 그 안에서 여성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생존을 모색한다.
소설은 일본인 화족 집안의 소녀 사키코와 쉐쯔의 관계를 통해, 식민지 사회 속에서 형성되는 우정과 연대를 그려낸다. 두 인물의 관계는 국가와 민족, 언어의 경계를 넘는 개인적 연결로 제시되며, 작품 전반에 걸쳐 감정의 변화와 성장의 과정을 이끈다. 백합소설의 요소는 이 관계를 중심으로 조용히 전개된다.
『꽃 피는 시절』은 꽃 이름으로 구성된 장들을 통해 여성 인물들의 삶을 계절처럼 배치한다. 성장과 좌절, 순응과 저항이 반복되는 구조 속에서 각 인물은 피고 지는 꽃처럼 등장했다 사라진다. 이는 한 개인의 성장담이라기보다, 한 시대를 살아간 여성 군상의 기록에 가깝다.
이 소설은 양솽쯔가 이후 발표한 『1938 타이완 여행기』로 이어지는 세계관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식민지 시기의 기억과 정체성 문제를 여성의 시선으로 재구성하는 방식은 이 작품에서 이미 뚜렷하게 형성되어 있다. 역사적 사건보다는 일상과 감정을 통해 시대를 포착하는 점이 특징이다.
『꽃 피는 시절』은 타임슬립이라는 장치를 사용하지만, 과거를 바꾸는 서사로 나아가지 않는다. 대신 현재의 감각을 지닌 인물이 과거의 질서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따라간다. 미래를 알고 있음에도 선택이 제한된 상황은, 개인의 자유와 시대적 조건의 충돌을 드러낸다.
이 작품은 타이완 근대사를 배경으로 한 역사소설이자, 여성의 삶과 관계를 중심에 둔 서사다. 식민지라는 역사적 조건 속에서 피어난 감정과 선택의 기록을 통해, 하나의 시절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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