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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정심·평상심·평등심의 시세계, 『불타의 달빛 유희』 신간 (수완·푸른사상)

번뇌의 세계를 관조하는 불교적 시선, 인간과 생명을 향한 사유의 언어

장세환2026년 4월 29일 오후 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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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의 달빛 유희.jpg출판사 제공

수완 스님의 시집 『불타의 달빛 유희』가 푸른사상 시선 225번으로 출간됐다. 이 시집은 번뇌로 가득한 세계를 관조하는 평정심, 모든 생명을 특별하게 대하는 평상심, 극락과 지옥의 경계를 허무는 평등심을 중심으로 불교적 사유를 시어로 풀어낸 작품이다.

시집은 총 네 개의 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자연과 인간, 수행과 일상, 역사와 사회 현실을 넘나드는 다양한 제재를 담고 있다. 수행자의 자리에서 바라본 세계는 추상적 교훈으로 제시되지 않고, 구체적인 풍경과 경험 속에서 차분히 드러난다. 산사와 강, 숲과 도시, 국내외 여행의 장면들이 시 속에 겹쳐지며 삶의 여러 국면을 조용히 비춘다.

표제작 「불타의 달빛 유희」는 고행 끝에 니련선하 강가에서 수행을 멈추는 고타마 싯다르타의 순간을 그린다. 달빛, 강물, 밀밭, 그리고 수자타의 공양이라는 장면을 통해 극단의 고행을 내려놓게 하는 자비와 평화의 순간을 시적으로 형상화한다. 깨달음은 초월적 장면이 아니라, 인간의 나약함을 받아들이는 자리에서 시작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다른 작품들 역시 교리의 설명이나 설법을 앞세우지 않는다. 「유마의 방」 연작에서는 한 사람과 만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지 않아야 한다는 평정심의 문제를 ‘텅 빈 방’이라는 상징으로 풀어낸다. 파도와 바람, 거울 같은 바다는 사라짐과 고요를 동시에 보여주며, 시인은 그 장면에서 집착 없는 마음의 상태를 드러낸다.

이 시집에서 인간은 완전한 존재가 아니다. 시인은 인간을 금이 가고 깨지는 ‘그릇’으로 바라본다. 쓰이다가 잊히고, 때로는 미처 쓰이기도 전에 부서지는 그릇이지만, 동시에 잊혀서는 안 될 빛을 가진 존재로 그린다. 이러한 인간관은 자비와 연민의 시선으로 이어지며, 특정 대상이나 사건을 넘어 보편적 사유로 확장된다.

『불타의 달빛 유희』에는 시사적 현실을 향한 시선도 담겨 있다. 분단의 공간, 정치적 격변, 자연재해의 기억들이 수행자의 언어로 기록된다. 그러나 비판이나 분노는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 시인은 격한 언어 대신 인욕과 관조의 태도로 현실을 바라보며, 고통의 시간을 건너는 마음의 자세를 시로 남긴다.

작품 해설에서 공광규 시인은 이 시집의 핵심을 ‘평정심과 평상심, 그리고 평등심의 서정화’로 설명한다. 수완 스님의 시는 특정 종교적 교리를 전달하기보다, 삶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를 묻는다. 수행자의 자리는 곧 인간 존재를 깊이 들여다보는 자리이며, 이 시집은 그 사유의 흔적을 담아낸 기록이다.

『불타의 달빛 유희』는 불교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종교적 경계를 넘어 읽을 수 있는 시집이다. 번뇌와 고통의 현실 앞에서 마음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를 묻는 이 작품은, 조용하지만 단단한 언어로 삶을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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