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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라는 공간을 다시 먹여 살피는 시선…『학교도 밥을 먹어요』 출간 (김금숙·이미지북)
아이들 목소리와 사물의 숨결로 완성한 관계의 동심, 84편의 동시
출판사 제공
김금숙의 동시집 『학교도 밥을 먹어요』는 질문 하나에서 시작한다. 학교는 아이들을 키우는 곳이지만, 혹시 그 역시 무언가를 ‘먹고’ 살아가는 존재는 아닐까. 이 소박한 상상은 곧 관계의 윤리로 확장된다. 아이들의 목소리, 뛰는 숨, 바닥에 흘린 소리까지 받아먹는 학교는 더 이상 배경이 아니라 살아 있는 주체로 등장한다. 동시는 그렇게 공간과 존재의 위계를 조용히 허문다.
표제작에서 학교는 “통통 튕기는 / 아이들 목소리 / 받아먹”으며, 철봉에서 매달리는 소리는 “떡볶이 맛”, 공을 차며 달리는 소리는 “바람 맛”이라고 말한다. 아이들이 없는 날, 그 소리들을 “꺼내먹”는다는 상상은 공간이 기억과 관계로 구성된다는 사실을 부드럽게 환기한다. 세계는 소유가 아니라 축적된 교감으로 살아 움직인다.
이 동시집의 힘은 사소한 생명과 사물에 말을 건네는 방식에서 드러난다. 「나비한테 말해야겠네」에서 화자는 교통사고가 날까 봐 걱정하며 나비에게 “위쪽 길로 날아봐”라고 타이른다. 더 나아가 “횡단보도 건너갈 때 / 같이 건너자”고 제안한다. 인간과 자연의 경계는 보호와 동행의 제스처 속에서 유연해진다. 돌봄은 일방이 아니라 나란히 걷는 약속이 된다.
「이렇게 좋은 공짜」는 세계를 소비의 논리가 아닌 선물의 체계로 다시 본다. “달도 공짜 / 별도 공짜 / 해도 공짜”로 시작해, 문만 열어두면 들려오는 새소리와 걸어 다니기만 해도 보이는 꽃들이 모두 ‘공짜’라고 말한다. 반복되는 “그걸 몰랐네”는 깨달음의 지연을 고백하는 동시에, 감각을 재학습하게 만드는 장치다. 마지막에 “흐르는 강물에 / 공짜 빛이 쏟아지네 / 내 어깨에도 묻어나게 / 일어나 걸으려네”라는 결말은 인식의 변화가 행동으로 옮겨지는 순간을 또렷이 포착한다.
김금숙의 동시는 유한함을 슬픔으로 몰아가지 않는다. 「꼴찌 눈의 꿈」에서 눈은 “봄꽃 한 번 보려고 / 맨 뒤로 가 줄 섰”고, “나비 한 번 보려고 / 꼴찌 눈으로 왔”다. “금방 녹아 버릴 걸 / 다 알면서도” 선택한 기다림은 사라짐 안에서도 의미를 고집하는 태도다. 동심은 순수의 동의어가 아니라, 알면서도 선택하는 용기의 다른 이름이다.
사물의 주체화 역시 이 시집의 중요한 축이다. 「휴지가 한 일」에서 휴지는 교실 바닥을 기어 다니는 거미를 “살살 살 감싸서 / 풀숲으로 데리고 가 / 놓아”준다. 가장 하찮게 여겨지는 물건이 생명을 옮기는 주체로 바뀌는 이 장면은 인간 중심의 위계를 뒤집는다. 배려는 거창하지 않고, 작고 가벼운 손짓 속에 있다.
현실 인식은 은유로 확장된다. 「계란판」은 버려진 계란판을 “방이 / 삼십 개나 되는 / 집 한 채”로 바라본다. 비가 오면 “들어왔다가 가라”는 표정으로 스스로 뒤집혀 지붕처럼 단단해지는 사물의 몸짓은, 주거와 빈곤의 문제를 동심의 언어로 환기한다. 여기서 동심은 현실을 회피하는 장치가 아니라, 현실을 우회해 정확히 겨냥하는 시선이 된다.
『학교도 밥을 먹어요』 전반에 흐르는 정조는 배려다. 「급식실 앞 민들레」에서 아이들은 밟지 않기 위해 “비켜서 줄”을 선다. 민들레는 “급식실 앞에서 / 피어나길 잘했네”라고 말한다. 질서와 배려가 자연스럽게 합의되는 이 장면은, 공동체가 어떻게 작동할 수 있는지를 짧은 호흡으로 보여준다.
김금숙의 언어는 과장하지 않는다. 대신 간결한 진술 속에 온기를 내장한다. 아이의 눈으로 세계를 낮추어 바라보는 순간, 사물과 생명은 말을 얻고 관계는 살아난다. 『학교도 밥을 먹어요』는 동시가 여전히—그리고 여전히 새롭게—세계 인식의 전환을 이끌 수 있음을 증명한다. 작은 목소리를 먹고 자라는 학교처럼, 이 시집은 우리가 흘려버린 소리들을 모아 다시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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