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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는 해결이 아니라 잠깐의 숨 고르기다, 『구멍청』(백희나, Storybowl)
마음에 난 구멍을 다정한 상상력으로 달여 내는 그림책
출판사 제공
『구멍청』은 백희나가 오래 다뤄 온 세계를 다시 불러오면서도, 그 전작들과는 다른 결의 위로를 건네는 그림책이다. 『달샤베트』의 달토끼들이 지구에 남아 식당을 연다는 설정은 친숙하지만, 이 책이 집중하는 대상은 결핍과 상실, 그리고 그것을 잠시나마 견디게 하는 작은 해소다.
이야기는 보름달이 뜬 밤, 깊은 산속에 문을 여는 달토끼 식당에서 시작된다. 이 식당은 아무 때나 열리지 않는다. 제대로 된 요리가 완성된 밤에만 문을 열며, 그들이 준비하는 음식은 ‘구멍청’이다. 나물도, 곡식도 아닌 ‘구멍’을 달여 만든 이 음식은, 손에 잡히지 않지만 누구나 가지고 있는 마음의 빈자리를 재료로 삼는다.
달토끼들이 구멍을 대하는 태도는 단호하다. 구멍은 막거나 숨길 대상이 아니다. 자연산 구멍만을 고르고, 깊고 짙은 구멍일수록 좋은 재료로 여긴다. 이 설정은 결핍을 실패나 결손으로 보지 않고, 살펴보아야 할 상태로 전환한다. 『구멍청』에서 상처는 제거의 대상이 아니라, 정성의 대상이다.
식당을 찾은 첫 손님은 몸집 작은 곰돌이다. 그는 아기 주인을 재워 두고 잠시 식당에 들렀다고 말한다. 이 짧은 설정만으로도, 곰돌이는 돌봄의 역할을 맡은 존재임이 분명해진다. 아기를 지키고, 달래고, 먼저 잠재운 뒤 찾아온 이 손님은, 지친 돌봄의 얼굴을 대표한다.
『구멍청』이 특별한 이유는, 해결을 약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구멍청 한 그릇은 모든 문제를 없애 주지 않는다. 다만 “한동안은 잊고 살 수 있을 것 같아”라는 곰돌이의 말처럼, 잠시 내려놓을 수 있게 한다. 이 책의 위로는 근본적 회복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버팀에 가깝다.
백희나는 이번 작품에서도 손으로 빚은 세계를 고집한다. 미니어처 식당, 달떡과 그릇, 헌 옷으로 치른 음식값, 느슨하지만 치밀한 공간 구성은 이 이야기의 감각을 뒷받침한다. 특히 헌 옷을 대가로 내놓는 설정은, 누군가의 몸을 지나온 시간과 흔적을 교환의 언어로 삼으며 독특한 정서를 만든다.
인물의 얼굴은 과장되지 않지만, 충분히 말한다. 곰돌이의 헝클어진 털과 조심스러운 표정, 달토끼들의 능청스러운 손놀림은 설명 없이도 관계의 결을 전달한다. 이 책의 장면들은 마치 작은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연극처럼 구성되어 있으며, 정지된 이미지 안에 시간의 밀도가 스며 있다.
『구멍청』은 아동 독자만을 향하지 않는다. 이 책의 질문은 분명 어른의 삶을 향해 있다. 돌보느라 자신을 미뤄 온 사람, 성실하게 하루를 채우고도 허기지는 마음을 가진 사람,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구멍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이 책은 말을 건다.
이 그림책이 말하는 ‘치유’는 완결형이 아니다. 한 그릇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고 있다. 그러나 백희나는 그 충분하지 않음 속에서도 가능한 온기를 택한다. 잠깐의 쉼, 작은 해소, 다시 버틸 수 있을 만큼의 온기. 『구멍청』은 바로 그 지점까지를 책임진다.
『구멍청』은 백희나 특유의 상상력이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책이다. 요란한 교훈도, 선명한 결론도 없다. 대신 독자가 자신의 구멍을 떠올릴 여백이 남는다. 이 책을 덮고 나면, 독자는 어쩌면 자신의 구멍청이 어떤 맛일지 잠시 생각하게 된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의 역할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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