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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바깥에서 다시 쓰는 삶, 『셋. 바깥을 향한 열망』(조프루아 드 라갸느리, 글항아리)

가족 중심 질서를 넘어 ‘우정’을 하나의 삶의 형식으로 재구성하는 사회철학적 실험

최준혁2026년 4월 23일 오후 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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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 바깥을 향한 열망.jpg출판사 제공

관계는 대개 이미 정해진 틀 속에서 이해된다. 가족, 연인, 혈연, 제도. 『셋. 바깥을 향한 열망』은 이 익숙한 질서 바깥에서 관계를 다시 사유하려는 시도다. 이 책이 내세우는 핵심은 단순하다. 우정은 삶의 일부가 아니라, 삶 자체가 될 수 있다는 급진적인 명제다.

저자 조프루아 드 라갸느리는 자신의 삶을 사례로 삼는다. 디디에 에리봉, 에두아르 루이와의 관계를 통해 ‘셋’이라는 독특한 구조를 구성하고, 이를 하나의 삶의 형식으로 밀어붙인다. 이 관계는 단순한 친밀함을 넘어선다. 서로의 경험을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각자의 삶이 타자의 삶 안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상태를 지향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서로의 삶을 실시간으로 기록하는 연속된 일기와 같다”는 문장은 이 책의 핵심을 압축한다.

이러한 우정은 기존 사회 질서와 충돌한다. 특히 가족 중심주의와의 긴장이 두드러진다. 사회는 여전히 가족을 중심으로 관계를 조직하고, 그 바깥의 관계는 불안정하고 비공식적인 것으로 취급한다. 코로나19 시기 드러난 이동 규제와 관계의 위계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가족을 만나기 위한 이동은 정당화되지만, 친구를 만나기 위한 이동은 통제의 대상이 된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에서 문제를 제기한다.

라갸느리는 이를 ‘3의 세계’라고 부른다. 둘의 관계가 아닌 셋의 관계, 더 나아가 제도 밖에서 스스로를 조직하는 관계의 형식이다. 이 세계는 단순한 감정적 유대가 아니라, 시간과 리듬, 생활 방식까지 재배열하는 실천이다. 친구를 만나는 일이 다른 모든 일정에 우선하는 과제가 되고,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삶의 구조 자체를 바꾸는 선택이 요구된다.

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는 우정을 낭만적으로 미화하지 않는 데 있다. 오히려 우정을 하나의 윤리, 나아가 정치적 실천으로 끌어올린다. 관계는 더 이상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구성하고 유지해야 하는 삶의 기술이 된다. 이때 우정은 타인의 인정에 의존하지 않는 삶, 스스로의 기준으로 자신을 조직하는 방식과 연결된다.

결국 『셋. 바깥을 향한 열망』은 관계에 대한 질문을 다시 던진다. 우리는 어떤 관계를 선택하며 살아가는가, 그리고 그 선택은 얼마나 자유로운가. 가족과 제도가 이미 배치해놓은 삶의 궤도 위에서 벗어나, 다른 삶의 가능성을 실험할 수 있는가. 이 책은 그 질문을 개인의 경험과 사회적 구조를 교차시키며 끝까지 밀어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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