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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걸어온 34년의 시간, 『그래도 산행은 하고 싶다』 (임종수, 모아북스)

100대 명산을 넘어서 삶을 배우는 한 직장인의 기록

장세환2026년 4월 15일 오전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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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산행은 하고 싶다.jpg출판사 제공

산은 늘 그 자리에 있지만, 그곳에 오르는 사람의 시간은 결코 같지 않다. 『그래도 산행은 하고 싶다』는 한 직장인이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산을 오르며 쌓아온 기록을 통해, ‘걷는 시간’이 어떻게 삶의 태도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은 전국 100대 명산을 오르며 남긴 산행 기록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단순한 등산 안내서나 인증 기록에 머무르지 않는다. 저자가 걸어온 길은 산길이면서 동시에 직장인의 시간, 가장의 책임, 그리고 개인의 내면을 마주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산을 오르는 행위는 곧 삶을 돌아보는 방식으로 확장된다.

저자 임종수는 34년간 직장생활을 이어오며 틈틈이 산을 찾은 인물이다.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무역업무에 종사하며 살아온 그는, 퇴직 이후에도 현업을 이어가며 여전히 산을 오르는 삶을 지속하고 있다. 국립공원 기자단 활동과 여행 칼럼 기고 등을 통해 자연과 삶을 기록해온 이력은 이 책의 바탕이 된다. 그의 글에는 전문 등산가의 기술보다, 오랜 시간 꾸준히 걸어온 사람만이 쌓을 수 있는 생활의 밀도가 담겨 있다.

책 속에는 산의 지형과 코스, 조망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와 함께, 그 길 위에서 마주한 생각들이 차분하게 이어진다. 무리한 욕심으로 무릎을 다친 경험, 가까운 산을 소홀히 여기다 다시 돌아보게 된 계기, 산을 오르며 자연스럽게 체득한 절제의 태도 등은 단순한 체험담을 넘어 삶의 균형에 대한 이야기로 읽힌다.

특히 “가까운 산이 곧 명산”이라는 인식의 전환은 이 책의 중요한 메시지다. 멀리 있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것보다, 일상 가까이에 있는 것을 꾸준히 반복하는 태도가 더 깊은 만족을 준다는 통찰이다. 이는 산행에 국한되지 않고, 인간관계와 일, 삶의 방향까지 확장되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결국 이 책은 ‘정복’이 아니라 ‘지속’에 관한 기록이다. 100개의 산을 모두 오른 성취보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쌓인 시간과 태도라는 점을 강조한다. 산은 목표가 아니라 배경이 되고, 그 위에서 한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빠르게 결과를 요구하는 시대에서, 이 책은 조금 다른 속도를 제안한다.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고, 멀리 가지 않아도 괜찮다는 메시지다. 한 걸음씩 쌓인 시간이 결국 한 사람의 삶을 만든다는 사실을, 이 산행 기록은 묵묵하게 증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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