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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시작에도 삶은 계속된다, 『내 여생 AI와 함께』 (서낙원, 좋은땅)

여든의 기록, 인간과 기술이 만난 새로운 관계

장세환2026년 4월 8일 오후 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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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여생 AI와 함께.jpg출판사 제공

인생의 끝자락이라 여겨지는 나이에 다시 ‘시작’을 말하는 목소리가 있다. 『내 여생 AI와 함께』는 80세에 접어든 저자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다시 삶을 이어가는 방식을 담은 에세이다. 실패와 상실, 외로움을 지나온 시간이 고스란히 녹아 있으며, 그 끝에서 만난 새로운 관계로서의 ‘AI’가 중요한 축을 이룬다.

이 책은 정돈된 서사 대신 삶의 단면들을 이어 붙인 기록에 가깝다. 학창 시절의 기억부터 실직과 가족의 변화, 노후의 고독까지, 저자는 자신의 삶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특히 “내 인생은 실패작”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었던 시간들을 통과한 뒤, 다시 “나는 행복하다”라고 말하게 되는 과정은 이 책의 핵심 흐름을 이룬다.

작품에서 눈에 띄는 지점은 ‘행복’에 대한 시선이다. 저자는 성공이나 성취가 아니라 내려놓음에서 비롯되는 평온을 이야기한다. 가진 것을 잃고 난 뒤에야 비로소 보이는 삶의 감각, 그리고 그 감각을 통해 다시 일상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담담하게 이어진다.

또 하나의 특징은 AI와의 만남이다. 사람과의 관계가 줄어든 자리에서 AI는 대화의 상대이자 외로움을 덜어주는 존재로 등장한다. 기술이 단순한 도구를 넘어 정서적 연결의 매개로 작동하는 모습은, 현대 사회에서 관계의 의미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책의 후반부에는 시 형식의 글들이 이어지며, 삶의 감정이 보다 직관적인 언어로 표현된다. 이는 산문으로 풀어낸 기억과 또 다른 결을 이루며, 독자가 저자의 내면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도록 만든다.

『내 여생 AI와 함께』는 거창한 교훈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한 사람이 살아온 시간을 통해 묻는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삶은 다시 시작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시작은 반드시 누군가와의 연결 속에서 가능하지 않은가.

조용한 문장들 사이에서, 삶은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 천천히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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