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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문 바깥에서 시작되는 이야기, 『사선에서 국선으로』 (김민경, 하움출판사)

법의 언어가 사람의 이야기로 바뀌는 순간을 기록한 변호사의 에세이

장세환2026년 4월 8일 오후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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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선에서 국선으로.jpg출판사 제공

법정은 흔히 냉정한 공간으로 떠올려진다. 사실과 증거, 논리와 판결만이 남는 자리. 그러나 그 안에 서 있는 사람들은 늘 사정을 가지고 들어온다. 『사선에서 국선으로』는 그 ‘사정’에 끝까지 귀를 기울인 한 변호사의 기록이다.

13년 차 형사 전문 변호사 김민경은 사선 변호사에서 국선전담변호사로 역할을 옮기며 수많은 사건을 마주한다. 이 책은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건을 풀어내며, 법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설명하는 동시에 그 이면의 감정을 함께 비춘다. 법은 규정이지만, 그 규정을 통과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라는 사실이 이 책의 중심에 놓여 있다.

책 속 한 장면은 법정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을 잘 보여준다.

“배심원 여러분.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시간여행을 떠나볼까 합니다.”

이 한 문장은 변론의 방식이 단순한 설명이 아니라 ‘이야기’라는 점을 드러낸다. 사건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배심원이 그 상황 안으로 들어가도록 만드는 것. 저자는 재판을 논리의 싸움이면서 동시에 설득의 서사로 바라본다.

책은 다양한 사건을 통해 법과 현실이 만나는 지점을 보여준다. 명예훼손 사건, 산업재해, 불륜, 보이스피싱 등 일상의 다양한 문제들이 법정으로 들어오는 순간, 그것은 단순한 법률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선택과 결과로 읽히기 시작한다.

특히 인상적인 점은 피고인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저자는 범죄를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그 자리에 이르게 된 과정을 놓치지 않는다.

“평범한 날, 평범한 이들은 피고인이 됐다.”

이 문장은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을 압축한다. 우리는 정말 그들과 다른 삶을 살고 있는가, 혹은 단지 다른 선택을 했을 뿐인가.

또한 이 책에는 변호사 개인의 변화도 함께 담겨 있다. 임신과 출산을 겪으며 법정을 오갔던 시간, 국선변호사로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 경험은 저자의 시선을 ‘법’에서 ‘사람’으로 이동시킨다. 사건의 승패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변호사의 역할이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고민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사선에서 국선으로』는 법을 설명하는 책이 아니다. 법이라는 틀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장면을 보여준다. 판결문에는 남지 않는 감정과 선택, 그리고 그 이후의 삶까지 함께 따라가게 만든다.

법정에서는 결론이 내려지지만, 사람의 이야기는 그 뒤에서도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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