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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재일조선인 여성의 생존을 추적한 디아스포라 소설, 『화이트 멀버리』 출간(로사 권 이스턴, 서삼독)

1928년 조선 평안도에서 시작해 1940년대 일본 오사카까지, 이름을 바꾸며 살아남은 한 여성의 삶을 기록한 역사소설.

장세환2026년 3월 30일 오전 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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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멀버리.jpg출판사 제공

1928년, 평안도 맹정리의 과부 집안 막내딸 미영은 선생님이 되겠다는 꿈을 품고 있다.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겠다는 결심도 함께였다. 그러나 언니를 따라 교토로 건너간 뒤 삶은 빠르게 방향을 바꿨다. 조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일자리가 막히고, 주소지만으로 사람을 구분하는 도시에서 미영은 살아남기 위해 이름을 바꾼다. '서미영'은 '미요코'가 됐다.

『화이트 멀버리』는 그 15년의 궤적을 따라가는 소설이다. 한국계 미국인 작가 로사 권 이스턴의 데뷔작으로, 작가의 할머니 실화를 바탕으로 썼다. 영미권 출간 후 아마존 역사소설·여성소설 등 3개 분야에서 1위에 올랐으며, 2만 건에 달하는 서평을 기록했다. 국내에는 권채령이 번역해 서삼독에서 출간한다.

소설은 4부로 구성된다. 1부는 1928년 조선 평안도, 2부와 3부는 1930년대 교토, 4부는 1943년 오사카다. 미영이 일본에 도착해 간호사이자 산파로 자리를 잡는 과정, 재일조선인 독립운동가 호준과의 관계, 태평양전쟁이 가속되는 시기의 선택이 시간 순서로 전개된다.

소설이 가장 집요하게 따라가는 것은 이름의 문제다. 미영은 일본인 행세를 하기 위해 미요코라는 이름을 쓴다. "자신이 둘로 갈라진 것 같았다. 겉으론 일본인 행세를 하지만 핏줄은 여전히 조선 사람이다." 이름을 바꾸면 속도 달라지는지 오랫동안 고민했지만 답을 찾지 못한 여자의 이야기가 3부 내내 이어진다. 정체성의 혼란은 추상적인 주제로 다뤄지지 않는다. 신분증, 주소지, 일본어 성경, 병원 채용 공고 같은 구체적인 장면들 안에서 작동한다.

작가 로사 권 이스턴은 일곱 살 때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했다. 보스턴 칼리지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로 일하다 두 자녀가 성인이 된 뒤 집필에 전념했으며, 예순에 가까운 나이에 이 소설을 출간했다. 작가 자신의 한국 이름은 '해원'이었으나 미국 이주 후 사라졌다. 소설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그 이력이 말해준다.

미영은 끝내 조선으로 돌아가겠다는 꿈을 버리지 않는다. 오디나무 가지 위에 앉아 있던 어린 시절의 자신을 기억 속에 품은 채로 살아간다. 이름은 바뀌었지만 그 이미지만은 지워지지 않았다. 소설의 부제 '오디나무 위에 두고 온 이름'은 그 거리를 정확하게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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