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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와 원한의 시대를 넘어서는 사유, 『쓰라림, 여기 잠들다』 (신티아 플뢰리, 문학동네)
감정의 반추를 멈출 때, 개인과 민주주의는 회복된다
출판사 제공
오늘의 사회는 분노와 혐오가 일상처럼 번지는 시대다. 개인의 상처는 쉽게 타인을 향한 적대로 번지고, 공동체는 갈등과 분열 속에서 균형을 잃는다. 『쓰라림, 여기 잠들다』는 이러한 시대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그 근원을 하나의 감정에서 찾는다. 프랑스 철학자이자 정신분석가 신티아 플뢰리는 이 책에서 현대 사회를 잠식한 핵심 정동을 ‘르상티망’으로 규정하고, 그 작동 방식을 집요하게 해부한다.
르상티망은 단순한 분노가 아니다. 저자에 따르면 이는 반복적으로 곱씹으며 축적된 쓰라림의 감정이다. 자신이 부당한 상황의 피해자라고 믿는 순간, 그 감정은 개인의 내면을 잠식하고 타자를 향한 적대와 혐오로 확장된다. 문제는 이 감정이 개인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정치와 자본, 디지털 환경과 결합한 르상티망은 집단적 감정으로 증폭되며, 포퓰리즘과 혐오 정치의 기반이 된다.
책은 이러한 감정의 흐름을 개인의 심리에서 집단의 구조로 확장해 분석한다. 1부에서는 르상티망에 빠진 개인의 내면을 정신분석적으로 탐색하고, 2부에서는 파시즘과 같은 역사적 사례를 통해 집단적 감정이 어떻게 폭력으로 이어지는지를 짚는다. 이어지는 3부에서는 이 감정을 넘어서는 길을 모색하며, 인간과 세계를 다시 연결하는 ‘열림’의 태도를 제안한다.
특히 저자는 르상티망을 단순히 제거해야 할 감정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인식하고 승화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감정을 억누르거나 부정하는 대신, 그 쓰라림을 견디고 이해하는 과정이 개인의 성숙과 공동체의 회복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은 개인의 의지뿐 아니라 제도와 사회의 역할이다. 저자는 신뢰 가능한 공공 시스템과 공동체적 윤리가 함께 작동할 때 비로소 이 감정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고 말한다.
『쓰라림, 여기 잠들다』는 단순한 철학서가 아니다. 이 책은 오늘의 현실을 진단하는 동시에, 감정과 사회를 다시 연결하는 방법을 탐색하는 실천적 인문서다. 개인의 상처를 넘어 공동체의 미래를 묻는 질문이 책 전반에 걸쳐 이어진다.
결국 우리가 마주해야 할 것은 세상이 아니라, 그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감정이며, 그 감정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인간과 민주주의의 방향이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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