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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사람의 자리를 견디는 법, 『알리스』 (유디트 헤르만, 마라카스)
슬픔이 머무는 자리를 따라가는 다섯 편의 이야기
출판사 제공
누군가를 잃는 일은 사건처럼 끝나지 않는다. 그 이후의 시간이 더 길고, 더 낯설다. 『알리스』는 바로 그 이후를 오래 바라본다. 상실이 지나간 자리에 무엇이 남는지, 남겨진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서둘러 설명하지 않고, 천천히 장면으로 보여준다.
이 책은 독일 작가 유디트 헤르만의 소설집으로, 다섯 편의 이야기가 하나의 이름 아래 이어진다. 중심에 놓인 인물 ‘알리스’는 서로 다른 이야기 속에서 누군가의 죽음을 마주한다. 가까운 사람을 잃고, 그 빈자리를 감당하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겪는다. 다만 이 과정은 극적인 전환이나 감정의 폭발로 그려지지 않는다. 오히려 아이를 돌보고, 정원을 가꾸고, 물속을 헤엄치고, 과일을 씻는 사소한 반복 속에서 드러난다.
헤르만의 문장은 감정을 앞세우지 않는다. 슬픔을 크게 설명하거나 강조하지 않고, 가능한 한 건조하게 남겨 둔다. 그런데 그 절제된 서술이 오히려 더 깊은 여운을 남긴다. 누군가가 아직 숨을 쉬고 있는 방 안의 사물들, 시간이 흘러도 그대로 놓여 있는 책과 의자, 옷 같은 것들이 죽음 이후의 시간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사라진 사람은 없지만, 그가 남긴 자리는 여전히 현재형으로 존재한다.
이 소설이 오래 남는 이유는 슬픔을 해결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실을 극복하거나 극적으로 넘어서려는 서사는 여기서 거의 보이지 않는다. 대신 인물들은 슬픔을 안은 채 살아간다. 그것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때로는 조심스럽게, 때로는 무심한 얼굴로 일상을 이어 간다. “미쳐 버리지 않고 그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는 것”이라는 문장은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태도처럼 읽힌다.
알리스라는 인물 역시 특별히 강인하게 묘사되지 않는다. 위로를 구하지도, 쉽게 무너지지도 않는다. 다만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방식으로, 자기만의 거리에서 슬픔을 견딘다. 그래서 이 소설은 누군가를 잃은 사람들의 내면을 설명하기보다, 그들이 어떻게 시간을 통과하는지를 보여주는 데 더 가까워진다.
읽는 동안 사건은 크지 않다. 하지만 장면 하나하나가 오래 남는다. 빛이 천천히 움직이는 방, 오래전과 현재가 겹쳐 보이는 순간, 사라진 사람을 떠올리며 스스로의 이름을 부르는 장면 같은 것들. 헤르만은 그런 아주 작은 균열을 통해 삶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포착한다.
이 책은 슬픔을 위로하지 않는다. 대신 슬픔이 머물 수 있는 자리를 조용히 만들어 둔다. 그래서 더 오래 곁에 남는다. 어떤 감정은 빨리 지나가지 않는다는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된다는 사실을, 이 소설은 말없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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