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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결을 다독이는 제주의 색채, 『그럴 수 있다 그것이 인생이다』 (이왈종, 좋은생각)

제주에서 길어 올린 풍경과 사유로 건네는 화가 이왈종의 첫 에세이

최준혁2026년 3월 25일 오후 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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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수 있다 그것이 인생이다.jpg출판사 제공

삶은 자주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붙잡으려 할수록 더 멀어지는 날도 있고, 잘 견디고 있다고 믿던 마음이 어느 순간 툭 꺾일 때도 있다. 『그럴 수 있다 그것이 인생이다』는 그런 흔들림 앞에서 무리하게 해답을 밀어넣지 않는다. 대신 한 발 물러서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 지나친 단정과 극단에서 벗어나 삶의 결을 받아들이는 시선을 천천히 펼쳐 보인다.

이 책은 제주를 대표하는 화가 이왈종의 첫 에세이다. 서울에서 활동하던 그는 중년에 제주로 삶의 자리를 옮긴 뒤, 자연과 사람, 일상의 풍경이 뒤섞인 독자적인 화풍을 깊게 밀고 왔다. 이번 책에는 그 변화의 궤적이 함께 담겼다. 제주로 향하기 전의 초기작부터 아직 공개되지 않았던 신작까지 80여 점의 작품이 수록돼 있어, 한 화가의 사유와 화면이 어떻게 함께 넓어졌는지를 따라가게 만든다.

책의 중심에는 이왈종이 오래 붙들어 온 ‘중도’의 감각이 놓여 있다. 화려함과 수수함, 자연과 문명, 생활과 예술을 따로 갈라 위계를 세우기보다, 서로 다른 것들이 한 화면 안에서 함께 숨 쉬는 방식이다. 이 태도는 제주 생활과 맞물리며 더 또렷해진다. 바람과 바다, 억새와 꽃, 사람과 동물이 한데 어우러지는 풍경은 그에게 단지 그릴 대상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가 된다.

문장도 그림을 닮아 있다. 지나치게 설명하거나 단언하지 않고, 독자가 잠시 머물며 스스로 받아들일 여백을 남긴다. “그럴 수 있다 그것이 인생이다”라는 말 역시 체념의 문장이 아니라, 삶의 모든 굴곡을 억지로 통제하려는 마음을 조금 내려놓게 하는 호흡에 가깝다. 옳고 그름을 급히 재단하기보다, 사라지는 것과 남는 것 사이를 함께 바라보게 만드는 말이다.

반야심경에 대한 화가만의 풀이도 이 책의 인상을 깊게 한다. 종교적 설명에 머무르지 않고, 제주에서 살아낸 시간과 작업의 변화 속에서 얻은 감각을 바탕으로 풀어낸다. 철학은 관념으로 떠 있지 않고, 생활 속에서 몸에 밴 태도로 내려온다. 극단으로 기울지 않으려는 습관, 자연 앞에서 다시 숨을 고르는 마음, 판단보다 먼저 바라보려는 자세가 문장 곳곳에 스며 있다.

무엇보다 반가운 점은 책이 위로를 지나치게 부풀리지 않는다는 데 있다. 상처를 쉽게 덮는 말이나 억지 긍정 대신, 흔들림도 삶의 일부로 놓아두는 쪽에 더 가깝다. 그래서 이 책의 위로는 크고 단호한 목소리가 아니라, 오래 그림을 그려온 사람이 조용히 건네는 숨결처럼 읽힌다. 바쁜 일상에서 잠시 멈춰 서고 싶은 독자, 마음이 한쪽으로 너무 기울어 있다고 느끼는 독자에게 이 책은 느리고 단단한 쉼으로 닿을 법하다.

제주의 풍경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그 풍경을 바라보는 한 사람의 시선이 오래 다져져 있어서 더 오래 남는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그림과 문장이 함께 묻는다. 지금의 삶을 너무 거칠게 몰아붙이고 있지는 않은지, 잠시 멈춰 바라보는 일만으로도 달라지는 것이 있지 않은지. 그 물음 앞에서 마음의 속도가 조금 누그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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