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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은 멈춰 있는 존재가 아니라 느린 방식으로 살아가는 생명이다, 『식물의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이일하, 초봄책방)
식물의 ‘느림’에 담긴 생존 전략과 생명의 본질을 다시 묻다
출판사 제공
우리는 식물을 바라볼 때 흔히 ‘움직이지 않는 존재’로 인식한다. 그러나 이일하 서울대학교 교수의 신간 『식물의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는 이러한 통념을 정면으로 뒤집는다. 이 책은 식물이 정지된 존재가 아니라 인간과는 전혀 다른 속도의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반응하고 살아가는 생명체임을 과학적 근거와 함께 풀어낸다.
저자는 식물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속도의 차이’를 먼저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간은 빠른 변화에는 민감하지만, 느린 변화에는 둔감하다. 그 결과 식물의 생장과 반응을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고, 그들을 배경처럼 취급해 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식물은 빛과 습도, 온도 변화에 끊임없이 반응하며, 유전자 발현과 호르몬 작용을 통해 환경에 적응하는 복잡한 생명 활동을 이어간다.
특히 책은 식물의 느림이 단순한 생리적 한계가 아니라 ‘전략’이라는 점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이동이 불가능한 대신, 식물은 자신이 놓인 환경에 맞춰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방식으로 생존해 왔다. 뿌리를 내린 자리에서 도망치지 못하는 조건이 오히려 정교한 적응 능력을 발전시켰다는 해석이다.
이러한 관점은 식물과 인간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식물은 단순한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 지구 환경을 형성해 온 핵심 존재다. 약 30억 년 전 시작된 광합성은 대기 중 산소를 만들어 냈고, 오늘날 모든 동물의 생존 기반을 마련했다. 우리가 숨 쉬는 공기조차 식물의 긴 시간 속에서 축적된 결과라는 점에서, 식물은 생명사의 중심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책은 과학적 설명을 넘어 인문학적 질문으로 확장된다. 인간의 시간은 직선적으로 흐르지만, 식물의 시간은 순환한다는 점에서 두 존재의 삶의 방식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낙엽이 흙이 되고, 그 흙이 다시 생명을 키우는 과정은 ‘끝’이 아닌 ‘반복’으로 이어진다. 이는 성장과 실패를 바라보는 인간의 태도에도 시사점을 던진다.
이일하 교수는 30여 년간 식물을 연구해 온 과학자로, 그간의 연구 경험과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식물의 세계를 쉽게 풀어냈다. 특히 ‘식물은 왜 움직이지 않는가’, ‘식물은 어떻게 환경을 인식하는가’ 같은 질문을 통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식물의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는 단순한 식물학 입문서를 넘어,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생명’의 기준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빠름과 효율을 중시하는 시대 속에서, 느림이라는 방식이 어떻게 생존의 전략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결국 이 책은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우리는 과연 어떤 시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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