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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자 아버지 vs. 신학자 아들』 (그레고리 A. 보이드, 에드워드 보이드. 비전북)

신념이 부딪힌 자리에서 시작된 편지, 관계를 다시 쓰다

장세환2026년 3월 24일 오전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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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자 아버지.jpg출판사 제공

신앙은 언제 가장 치열해질까.
강단 위도, 책 속도 아니다. 가족과 마주 앉았을 때다.

『무신론자 아버지 vs. 신학자 아들』은 그 가장 불편한 자리에서 시작된다. 신을 믿는 아들과, 신을 거부하는 아버지. 그것도 단순한 의견 차이가 아니라 오랜 적대와 불신이 쌓인 관계다. 10년이 넘도록 두 사람은 신앙에 대해 거의 말을 나누지 않았다. 말하면 더 멀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침묵을 깨는 방식이 흥미롭다. 대면이 아니라 ‘편지’다. 감정이 먼저 튀어나오지 않도록, 생각을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도록 선택한 방식. 그렇게 2년에 걸쳐 오간 스물아홉 통의 편지가 이 책의 전부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논쟁의 방향에 있다. 아버지는 날카롭다. “왜 이렇게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한가”, “전능하다면 왜 지옥이 존재하는가”, “자유를 위해 수많은 희생을 감수하는 게 과연 옳은가.” 질문은 단순한 반박이 아니라, 신앙의 가장 취약한 지점을 정확히 겨눈다.

그에 대한 아들의 답변은 의외로 공격적이지 않다. 논리를 세우되, 상대를 밀어붙이지 않는다. 설득하려 하기보다 이해하려 한다. 신앙을 ‘이겨야 할 논쟁’이 아니라 ‘나누고 싶은 경험’으로 다루는 태도다.

그래서 이 책의 긴장은 논리 싸움이 아니라, 태도의 차이에서 나온다. 질문은 계속되지만, 관계는 무너지지 않는다. 오히려 편지가 쌓일수록 둘 사이의 거리는 조금씩 좁혀진다. 독자는 그 과정을 따라가며 깨닫게 된다. 신념의 변화보다 더 어려운 건 관계의 회복이라는 사실을.

결정적인 순간도 극적이지 않다. 일흔네 살의 아버지가 마침내 “나는 믿는다”고 말하는 장면. 이 문장은 논리의 승리가 아니라, 시간과 신뢰가 만든 결론에 가깝다. 그래서 더 조용하고, 더 묵직하다.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사람은 어떻게 바뀌는가.

답은 조금 낯설다.
이긴 쪽의 논리가 아니라,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관계가 사람을 바꾼다.

그래서 『무신론자 아버지 vs. 신학자 아들』은 신앙서이면서 동시에 관계에 대한 기록이다. 서로를 설득하지 못했던 시간들이, 결국 서로를 이해하게 만든 이야기.

읽고 나면 묻게 된다.
우리는 정말 상대를 설득하려 하는 걸까, 아니면 이해하려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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