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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척박한 시대에도 붓은 멈추지 않았다, 『나는 화가다 그럼에도, 그렸다』 (박영택, 심통)

근대 한국미술의 균열 속에서 피어난 40개의 시선

장세환2026년 3월 20일 오후 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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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화가다 그럼에도, 그렸다.jpg출판사 제공

한국 근대미술은 풍요보다 결핍에서 출발했다. 식민지와 전쟁이라는 격동의 시간 속에서 예술은 쉽게 지속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화가다 그럼에도, 그렸다』는 바로 그 시대를 통과하며 끝내 붓을 놓지 않았던 화가들의 흔적을 따라간다. 한 시대의 미술을 넘어, 존재를 버티게 한 예술의 힘을 복원하는 작업이다.

이 책은 회화에만 머물지 않는다. 신문 만평, 책 표지, 조각, 사진 등 다양한 시각 이미지를 통해 근대의 감수성을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총 40점의 작품을 중심으로, 각각이 탄생한 시대적 배경과 조형적 의미를 치밀하게 분석하며 당시의 현실과 예술이 어떻게 맞물려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저자 박영택은 미술평론가로서 오랜 시간 한국 현대미술을 연구해온 인물이다. 그는 1910년 조선의 붕괴부터 1950년대 후반까지 이어지는 시간을 따라가며, 한국 미술이 어떤 조건 속에서 형성되었는지를 복원한다. 특히 일제강점기와 전쟁 이후의 시기를 ‘가장 헐벗고 초라했던 시기’로 규정하면서도, 그 속에서 오히려 강렬한 예술적 성취가 태어났다는 점에 주목한다.

책에 등장하는 작가들은 단순히 작품을 남긴 인물이 아니라, 시대와 맞서며 자신의 언어를 찾아간 존재들이다. 나혜석, 이중섭, 김환기 등 익숙한 이름부터 상대적으로 덜 조명된 작가들까지, 각자의 방식으로 현실을 견디고 표현해낸 흔적이 이어진다. 이들의 작업은 단순한 미술사적 기록이 아니라, 한국적 현대미술의 가능성을 밀어 올린 출발점으로 읽힌다.

『나는 화가다 그럼에도, 그렸다』는 결국 질문을 남긴다. 가장 어려운 시대에 예술은 어떻게 살아남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 흔적을 통해 무엇을 다시 바라볼 수 있는가. 결핍의 시간 속에서도 꺼지지 않았던 창작의 의지는 오늘의 미술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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