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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지우지 않고 살아가는 법, 『상처로 숨 쉬는 법』 (김진영, 한겨레출판)

상처를 허파처럼 받아들이며 삶을 다시 사유하는 철학 강의록

장세환2026년 3월 18일 오전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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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로 숨 쉬는 법.jpg출판사 제공

살아가는 일은 때로 상처를 덜어내는 과정처럼 보이지만, 이 책은 전혀 다른 방향을 제시한다. 『상처로 숨 쉬는 법』은 상처를 없애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 상처를 통해 숨 쉬고 살아가야 한다는 역설적인 질문에서 출발한다.

한겨레출판에서 출간된 이 책은 철학자 김진영의 아도르노 강의를 바탕으로 정리된 강의록이다. 『아침의 피아노』, 『이별의 푸가』, 『낯선 기억들』에 이어지는 작업으로, 삶과 철학, 문학을 교차시키며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사유를 담았다. 강의 형식으로 구성된 18개의 이야기 속에서 저자는 일상의 문제를 철학적 시선으로 다시 읽어낸다.

책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지 않다. “왜 선행과 부드러움이 상처가 되는가”라는 물음은 곧 “상처는 어떻게 삶의 일부가 되는가”로 이어진다. 여기서 저자는 상처를 봉합하거나 극복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태도를 벗어나, 그것을 삶의 호흡처럼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나아간다. 상처를 통해서만 우리가 진짜 삶을 인식할 수 있다는 통찰이다.

아도르노의 비판철학을 매개로 삼은 점도 특징이다.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개인의 삶이 어떻게 왜곡되고, 어떤 방식으로 은폐되는지를 짚어내며, 사랑과 욕망, 관계, 언어, 문화까지 다양한 영역을 비판적으로 해석한다. 철학은 추상적인 이론에 머물지 않고, 오늘을 살아가는 개인의 구체적인 삶으로 내려온다.

특히 이 책은 독자에게 편안한 위로를 건네지 않는다. 대신 스스로의 삶을 냉정하게 바라보라고 요구한다. 내가 어떤 방식으로 살아왔는지, 무엇을 잃었는지, 그리고 무엇을 포기하며 지금의 나를 만들었는지를 직시하게 만든다. 그 과정에서 비로소 ‘살아 있다’와 ‘산다’의 차이를 묻게 한다.

『상처로 숨 쉬는 법』은 삶을 고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고쳐지지 않는 상태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방식을 탐색한다. 우리가 가진 것이 상처뿐이라면, 그것으로 숨 쉬어야 한다는 말처럼, 이 책은 삶을 다시 시작하는 다른 감각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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