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상세

newbooks

악의 얼굴은 얼마나 평범한가, 『뉘른베르크, 나치와 정신과 의사』 (잭 엘하이, 히포크라테스)

뉘른베르크 재판의 현장에서 추적한 전범의 심리와 인간 본성의 균열

장세환2026년 3월 10일 오전 11:18
508

뉘른베르크.jpg출판사 제공

전쟁이 끝난 뒤에도 질문은 남는다. 어떻게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이 인류 최악의 범죄에 가담할 수 있었는가. 잔혹한 학살과 전쟁 범죄를 저지른 이들은 처음부터 완전히 다른 존재였는지, 아니면 우리와 닮은 얼굴을 한 채 권력과 욕망에 휩쓸린 사람들이었는지 묻게 된다.

『뉘른베르크, 나치와 정신과 의사』는 이 질문을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의 현장에서 끌어올린다. 1945년 미국의 정신과 의사 더글러스 켈리는 재판을 앞둔 나치 전범들의 정신 상태를 평가하기 위해 파견된다. 그의 공식 임무는 피고인들이 재판을 치를 수 있도록 상태를 유지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켈리는 그보다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이들에게 공통된 정신적 결함이 있는지, 이른바 ‘나치 정신’이라 부를 만한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려 한 것이다.

책의 중심에는 헤르만 괴링이 있다. 나치 독일의 이인자이자 전범 재판의 핵심 인물인 괴링은 단순한 악인의 틀에 갇히지 않는다. 켈리는 그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압도적인 카리스마와 사람을 사로잡는 매력을 마주한다. 이 대목에서 책은 독자를 불편한 질문 앞으로 데려간다. 악은 흉측한 얼굴로만 나타나는가. 아니면 지적이고 설득력 있으며 때로는 매력적인 얼굴로 우리 앞에 서는가.

잭 엘하이는 뉘른베르크 재판을 다룬 수많은 기록 가운데서도 이 정신과 의사의 시선을 붙든다. 괴링과 헤스, 슈트라이허, 로젠베르크 같은 전범들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되살리면서, 재판정 안팎에서 움직인 심리와 권력의 메커니즘을 촘촘하게 따라간다. 논픽션이지만 장면의 밀도는 소설에 가깝고, 독자는 전범 연구가 아니라 악의 구조를 목격하는 독서에 끌려 들어가게 된다.

중요한 지점은 켈리의 결론이다. 그는 전범들에게서 하나의 특별한 정신병리만을 찾아내지 못한다. 오히려 많은 사람이 비슷한 조건에서 그들처럼 행동할 잠재력을 지녔다는 불길한 인식에 다다른다. 이 책이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과 함께 다시 읽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만 이 책은 수동적 복종만이 아니라 권력을 향한 적극적 욕망과 자기중심적 야심에도 주목한다.

『뉘른베르크, 나치와 정신과 의사』는 역사 속 전범을 해설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타인을 짓밟고 올라서려는 욕망이 어떻게 제도와 결합하고, 평범한 얼굴로 사회를 잠식하는지 묻는다. 악을 과거의 예외적 사건으로 밀어두지 않고 현재의 인간 조건으로 끌어오는 기록이다. 히포크라테스가 펴냈다.

관련 기사

글로벌 사우스의 중심, 『인도에서 기회를 만나다』 출간 (신시열, 이콘)

글로벌 사우스의 중심, 『인도에서 기회를 만나다』 출간 (신시열, 이콘)

6월 10일 오후 3:56
8
몸은 스스로 치유한다, 『자가 수리점』 출간 (헨리 비일러, 사이몬북스)

몸은 스스로 치유한다, 『자가 수리점』 출간 (헨리 비일러, 사이몬북스)

6월 10일 오후 3:52
11
사라지는 손목, 남는 체온 ― 『솜사탕 증후군』 (박윤일, 파란)

사라지는 손목, 남는 체온 ― 『솜사탕 증후군』 (박윤일, 파란)

6월 10일 오후 3:45
8

댓글 (0)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