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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떠난 자리에 핀 꽃을 내 방에 두었다』 신간 출 (전은수, 광연재)
불교적 사유로 무의식의 풍경을 더듬는 내면 산문집
출판사 제공
광연재가 전은수 작가의 산문집 『당신이 떠난 자리에 핀 꽃을 내 방에 두었다』를 펴냈다. 수행과 일상, 꿈과 현실의 경계를 따라가며 의식의 결을 기록한 책으로, 완결된 이야기보다 감각의 파동에 가까운 문장들이 낮과 밤 사이의 시간을 이끈다.
이 책은 연기라는 관점에서 기억과 감정을 따라간다. 현실의 장면이 어느 순간 꿈의 결로 바뀌고, 설명이 닿지 않는 세계가 문장 틈으로 스며든다. 작가는 그 낯선 순간을 과장하거나 단정하지 않고, 마주친 기척을 있는 그대로 적어 독자의 감각을 깨운다. 답을 제시하기보다 머무를 자리를 내어주는 방식이 책의 호흡을 만든다.
수록 글에서는 산사에서 예불을 마친 뒤 문득 등줄기를 타고 내려온 냉기, 그 찰나에 되살아난 오래전 밤의 풍경 같은 체험이 이어진다. 한 장면에서는 허공에 가부좌를 튼 존재를 마주한 화자가 “당신은 누구십니까”라고 묻고, “노래를 들어라”라는 짧은 말 앞에서 세계의 질감이 바뀌는 순간을 통과한다. 소리가 사라진 뒤 남은 침묵이 비어 있지 않다는 감각, 빛이 사물을 비추는 방식이 달라지는 체험이 반복되며 내면의 지형을 구축한다.
또 다른 글에서는 새벽 침대 위에 푸른 관복의 사내가 서서 “나는 임경업 장군이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작가는 그 순간의 충격을 감정으로 밀어붙이기보다, 날짜와 시간까지 기록하며 자신에게 열린 문을 확인한다. 꿈의 사건처럼 보이면서도 현실의 감각으로 남는 경험을 따라가며, 독자가 믿음과 의심 사이에 서도록 만든다.
후반부에는 ‘불의 발판’이라는 제목이 주문처럼 울리는 꿈의 추격이 펼쳐진다. 누군가가 “어서 그 책을 달라”고 요청하고, 화자는 서점을 향해 달리지만 문은 닫혀 있다. 상을 당한 사정, 잠긴 문, 끝났다는 연락이 이어지며, 무엇을 준비해야 한다는 압박과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의 허무가 교차한다. 이 장면들은 현실의 논리로 정리되지 않는 상태 자체를 전면에 세워, 독자가 자기 경험의 결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당신이 떠난 자리에 핀 꽃을 내 방에 두었다』는 수행의 언어와 일상의 감각을 한 문장 안에 겹쳐 놓으며, 고요와 떨림이 공존하는 내면의 여정을 기록한다. 설명보다 체험, 결론보다 여운을 선택한 문장들이 독자의 마음에 오래 남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노래는 가르침이 아니었다”는 고백처럼, 이 책은 설득이 아니라 울림으로 독자를 끌어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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