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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딘 시간 끝에 남은 문장, 『견디는 동안 쓰였다』 (이경화, 미다스북스)

무너짐을 통과한 뒤 조용히 남은 삶의 태도

장세환2026년 2월 11일 오후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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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디는동안쓰였다.jpg출판사 제공

잘 살아내는 법을 말하기보다, 끝내 떠나지 않은 시간을 돌아본다. 『견디는 동안 쓰였다』는 투병 이후 삶의 방향을 다시 묻기 시작한 저자가 묵묵히 앞으로 나아간 기록이다. 유년의 밥상에서 시작된 말과 관계의 기억을 따라가며, 무너짐 속에서도 삶을 놓지 않았던 시간을 조용히 더듬는다.

이 책의 출발점은 둥근 밥상이다. 할아버지의 국물, 어머니의 불 조절, 반찬이 모자랄 때의 망설임, 수저를 내려놓는 법 같은 장면들이 삶을 건너는 태도로 이어진다. ‘나의 모든 말은 밥상에서 시작되었다’는 고백처럼, 먹고 나누고 기다리던 시간은 저자에게 세계를 이해하는 첫 문장이었다.

병과 상실을 통과한 이후, 저자는 더 이상 증명하려 애쓰지 않는다. 대신 “나는 이제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 살지 않는다”는 태도로, 견딘 시간 위에 문장을 얹는다. 이 책은 극적인 회복담을 내세우지 않는다. 괜찮다고 단정하지도, 위로를 강요하지도 않는다. 다만 덜 무너지며 살아온 시간을 곁에 두고 함께 머문다.

구성은 유년의 기억에서 시작해 관계와 철학으로 확장된다. ‘나를 견디는 법’, ‘깨다에서 깨닫다로 가는 파열음’, ‘삶을 견디었더니 철학만 남았다’ 같은 장들은 버팀이 어떻게 사유가 되는지를 보여준다. 물결에 맞서기보다 몸을 맡긴 채 흘러가며 자리를 지키는 태도는, 삶을 통과한 사람만이 남길 수 있는 고요한 결을 만든다.

『견디는 동안 쓰였다』는 삶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피어난 문장들이다. 말 대신 침묵을 선택해온 시간, 오래 버텨온 날들 앞에 이 책은 크게 말하지 않는다. 다만 조용히 옆에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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