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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사서 마시는 사회, 『언보틀드』(대니얼 재피, 아를) 신간 소
병입생수 산업이 만든 불신의 구조와 물 인권의 위기
출판사 제공
언제부터 우리는 수도꼭지 대신 플라스틱병을 선택하게 되었을까. 깨끗함과 안전이라는 이름으로 병입생수를 마시는 일은 이제 일상이 됐다. 그러나 그 선택 뒤에는 환경오염과 공공성의 붕괴, 물 인권의 문제가 겹겹이 쌓여 있다. 『언보틀드』는 병입생수가 어떻게 글로벌 산업이 되었고, 그 과정에서 무엇이 무너졌는지를 추적한다.
『언보틀드』는 병입생수를 단순한 소비재가 아니라 사회적 구조의 산물로 바라본다. 저자 대니얼 재피는 불과 40년 전만 해도 병입생수가 일부 계층의 사치품에 불과했지만,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포장음료가 되었다고 짚는다. 이 변화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기업의 마케팅과 공공 수도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맞물린 결과라는 분석이다.
책은 병입생수 산업이 수돗물의 안전성에 대한 공포를 어떻게 증폭시켜 왔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사람들은 공공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한 집단적 행동보다, 더 안전하다고 믿는 물을 개인적으로 구매하는 선택을 하게 됐다. 이러한 소비 기반의 대응은 공공 수도 인프라에 대한 사회적 압박을 약화시키고, 다시 수돗물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악순환을 만들어냈다.
저자는 물 부족 또한 자연적 사실이 아니라 사회적·정치적으로 구성된 문제임을 강조한다. 글로벌 기업이 지역의 지하수와 수자원을 추출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갈등은, 물이 단순한 자원이 아니라 권리의 문제임을 드러낸다. 『언보틀드』는 지역 공동체가 연대해 물을 공공의 영역으로 지켜낸 사례를 통해 물 정의 운동의 가능성을 조명한다.
이 책이 던지는 핵심 질문은 명확하다. 깨끗한 물에 접근할 권리는 시장에 맡겨져야 하는가, 아니면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할 기본 조건인가. 저자는 모든 사람이 감당 가능한 가격으로 안전한 물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이 기본적인 인권이며, 그 권리는 플라스틱병 속에서는 실현될 수 없다고 말한다.
『언보틀드』는 병입생수를 도덕적으로 단죄하는 책이 아니다. 대신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왔고, 그 선택이 어떤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는지를 차분히 드러낸다. 물을 마시는 일상이 곧 정치와 윤리의 문제임을 일깨우는 이 책은, 공공성과 인권을 다시 묻는 출발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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