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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를 읽고 한국을 다시 본다”, 『자작나무 숲』 (김진영, 사람의무늬)
35년 러시아문학 강의의 축적을 칼럼으로 엮어, 동경과 두려움 너머의 연결을 찾는다
출판사 제공
한국에서 러시아문학은 늘 묘한 자리에 있었다. 낭만과 애수로 끌리면서도, 낯선 두려움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자작나무 숲』은 그 오래된 감정의 이중성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러시아를 통해 한국을 다시 읽어내는 러시아문학 에세이다.
저자 김진영은 35년간 대학에서 러시아문학을 가르쳐온 연구자다. 이번 책은 신문 칼럼 「자작나무 숲」을 재구성해, 러시아문학, 러시아문화, 한국이라는 3개의 축으로 이야기를 펼친다. 푸시킨에서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체호프, 브로드스키를 거쳐 21세기 작가들까지 폭넓게 아우르며, 작품 읽기와 일상의 경험을 한데 묶는다.
책의 첫 장면을 여는 푸시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는 이 책이 무엇을 하려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 편의 시가 한국 현대사 속에서 위안과 희망의 문구로 떠돌아다닌 기억을 끌어내며, 러시아문학이 한국 사회에서 어떤 표상으로 자리해왔는지를 짚는다. 낯선 세계의 문학이 어느 순간 ‘우리의 문장’이 되어버리는 과정이, 저자의 시선을 통해 차분하게 복원된다.
동시에 『자작나무 숲』은 러시아를 미화하는 책이 아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루소포비아가 확산된 시대의 공기 속에서, 저자는 감정의 편가르기와 단정 대신 읽기와 성찰의 태도를 고집한다. 러시아를 공부해온 지식인으로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되묻는 과정이 책 곳곳에 배어 있다.
이 에세이의 매력은 ‘강의실’보다 ‘삶’에 가깝다는 점이다. 작품 해설은 일상 속 감각에서 출발하고, 문화 이야기와 한국 사회에 대한 단상은 러시아라는 필터를 통과하며 다른 결로 선명해진다. 칼럼 형식의 짧은 글들이지만, 결국 한 권으로 읽히는 이유는 질문이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엇을 동경했고, 무엇을 두려워했으며, 그 감정은 지금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자작나무 숲』은 러시아문학 안내서이면서 동시에 ‘한국에서 러시아문학을 읽는다는 것’에 대한 자의식의 기록이다. 낭만과 공포, 위안과 불편함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독자라면, 이 책은 그 감정의 출처를 정리해 주는 조용한 지도처럼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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