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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공간에서 다른 세계를 바라본다는 것”, 『트러플』 (글라피라 스미스, 바람북스)

개의 시선으로 그려낸 사랑과 상실, 그리고 함께 산다는 감정의 기록

최준혁2026년 2월 3일 오후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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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러플.jpg출판사 제공

사람과 개는 같은 공간에 머물지만 같은 세상을 보지는 않는다. 『트러플』은 이 단순한 사실에서 출발해, 시선의 차이가 관계와 감정에 어떤 균열과 온기를 남기는지를 조용히 따라간다. 이 그래픽노블은 개와 인간,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에 흐르는 사랑의 결을 섬세한 이미지와 리듬으로 풀어낸다.

이야기는 키우던 개의 죽음을 앞두고 이를 외면하려는 노년의 남자와 딸의 통화로 시작한다. 병든 개의 안락사를 준비하는 딸과 끝내 마주하지 않으려는 아버지의 침묵 속에서, 흑백으로 구성된 현재의 장면은 점차 강렬한 색을 띠며 과거로 이동한다. 기억 속에는 중년의 호세 루이스와 그의 아내, 그리고 새로 가족이 된 강아지 트러플이 등장한다.

트러플은 부부의 일상에 작지만 분명한 변화를 불러온다. 늘 활달하고 감정을 숨기지 않는 남자와, 담담하고 거리를 유지하는 여자의 관계 속에서 트러플은 말없이 기쁨과 균열을 동시에 비춘다. 작가는 개의 시선과 인간의 시선을 색감으로 구분해 배치하며, 누군가에게는 무채하게 흐르는 시간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선명하게 빛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작품은 강아지의 성장과 노쇠, 그리고 인간의 중년과 노년이 겹쳐지는 시간을 따라간다. 퇴직과 질병,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인물들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곁에 머문다.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의 차이와 끝내 건너지 못한 감정의 간극은 트러플이라는 존재를 통해 더욱 또렷해진다.

『트러플』은 반려동물 서사에 머물지 않는다. 이 책은 함께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사랑이 언제나 같은 속도와 같은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조용히 드러낸다. 마지막에 이르러 인물은 비로소 상실을 직면하고, 웃기 위해 울어야 하는 순간이 있음을 받아들인다.

이 그래픽노블은 극적인 사건보다 감정의 결에 집중하며, 삶이 얼마나 많은 시선과 감정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보여준다. 『트러플』은 말없이 곁에 있던 존재들이 우리에게 남긴 사랑의 흔적을 차분하게 되짚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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