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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연약한 마음을 끝까지 믿는다, 『손모아 장갑과 가여움』(요시모토 바나나, 민음사)

작가가 은퇴해도 좋다가 말할 정도의 완성도를 자랑하는 소

장세환2026년 1월 23일 오전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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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모아 장갑과 가여움.jpg출판사 제공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을 읽을 때, 문장이 먼저 손을 내민다. 크고 선명한 결론을 들이미는 대신, 상실과 불안을 품은 사람 곁에 조용히 앉아 “괜찮아”라고 말하는 방식이다. 오랜만에 국내에 소개되는 소설집 『손모아 장갑과 가여움』은 그런 바나나의 감각이 가장 단단하게 돌아온 책이다. 제58회 다니자키 준이치로상을 수상한 이 작품집에는 단편 6편이 실렸고, 무대는 헬싱키, 로마, 타이베이, 홍콩, 가나자와, 하치조섬 등 세계 곳곳의 낯선 모퉁이로 뻗어 있다.

여섯 편의 출발점은 대체로 비슷하다. 누군가를 잃었고, 그 상실은 쉽게 봉합되지 않는다. 소설은 그 상태를 ‘극복’이라는 말로 밀어붙이지 않는다. 오히려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물러나는 시간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남겨진 사람이 오늘을 선택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제목에 들어 있는 ‘손모아 장갑’과 ‘가여움’은 작품집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다. 바나나가 말하는 가여움은 동정의 다른 이름이 아니라, 약함을 감추지 않는 인간에 대한 애정과 연민에 가깝다. 굳센 강인함을 훈장처럼 달기보다, 작고 연약한 감정의 동선을 끝까지 들여다보는 쪽에 무게를 둔다.

특히 이 책은 ‘어디로 가는가’보다 ‘어떻게 살아내는가’에 집중한다. 낯선 도시의 공기, 우연히 마주친 사람의 말투, 오래된 물건의 촉감 같은 사소한 요소들이, 상실을 안고도 삶이 계속된다는 사실을 조용히 증명한다. 누군가의 죽음이 세계의 끝을 만들어도, 세계는 여전히 거대하게 돌아가고, 남겨진 사람은 그 회전 속에서 자기만의 리듬을 다시 찾는다. 그 과정은 드라마틱하지 않지만, 그래서 더 오래 남는다.

『키친』 이후 바나나의 단편이 지닌 저력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의미 있다. 오랜 독자에게는 기다리던 재회가 되고, 처음 만나는 독자에게는 ‘바나나라는 감성’이 왜 세대를 넘어 읽히는지 납득하게 하는 입구가 된다. 삶이 가끔 너무 무겁게 느껴질 때, 이 소설집은 커다란 해답 대신 한 번 더 숨을 쉬게 해 주는 쪽을 택한다. 그게 문학이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구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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