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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의 ‘밖’을 꿈꾸는 언어의 균열, 『포스트서정시의 징후들』(오문석, 앨피)

상호침투로 읽는 한국 시의 동일성과 차이, 포스트서정시의 가능성을 묻다

장세환2026년 1월 21일 오후 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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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서정시의 징후들.jpg출판사 제공

서정시는 여전히 유효한가. 혹은 서정시를 넘어선다는 말은 어떤 방식으로 가능할까. 오문석의 시평론집 『포스트서정시의 징후들』은 이 질문을 “서정의 종말 선언” 같은 단호한 결론으로 밀어붙이지 않는다. 대신 ‘상호침투’라는 개념을 중심에 두고, 서정시 내부의 동일성이 어떻게 흔들리고, 그 균열 속에서 어떤 ‘차이’가 발생하는지 추적한다. 시의 내용을 해설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시적 언어가 현대인의 삶과 맞닿는 지점을 미학적으로 따라가며 서정의 안과 밖을 동시에 사유하려는 시도다.

책의 출발점은 모리스 블랑쇼가 말한 ‘재난의 글쓰기’다. 일상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세계를 뒤집어 보이게 만드는 글쓰기의 감각을 단서로 삼아, 저자는 한국 근현대 시인들의 작품 속에서 동일성의 서정시를 내부에서부터 흔드는 실마리를 찾아낸다. 김준오, 박인환, 이승훈, 이하석 등 여러 시인의 시를 경유하며, 서정시가 스스로의 경계를 어떻게 의심하고 재구성해 왔는지 보여준다.

구성은 ‘시와 서정’에서 시작해 ‘타자’, ‘놀이’, ‘미학’, ‘수학’, ‘시적 언어’, ‘반시’, ‘음악’, ‘종교’, ‘여성’, ‘생태’로 이어진다. 저자가 주목하는 핵심은 동일성이라는 제도 속에 갇힌 주체가 실패하고 병들며 주변으로 밀려나는 과정,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언어가 만들어내는 낯선 진동이다. 언어유희가 발음과 표기의 틈을 벌려 문자 표기의 불완전성을 드러내고, ‘추’의 미학이 기존의 미적 가상에 구멍을 내며, 무의미시의 단계가 “건강한 시쓰기”가 억압해 온 언어의 부정성을 호출하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박인환을 ‘외접선’의 이미지로 읽어 내며 동심원 같은 동일성의 질서에서 벗어나는 움직임을 설명하는 대목도 눈에 띈다.

이 책이 제시하는 ‘포스트서정’은 거창한 깃발이 아니다. 저자는 서정시를 초월하려는 선언 대신, 동일성의 내부에서 차이를 발굴하는 과정을 택한다. 상호침투의 현장, 곧 주체와 객체, 안과 밖의 거리가 사라지며 서로의 내부로 스며드는 순간을 포스트서정시의 가능성으로 제안한다. 한국 시가 놓인 자리와 앞으로의 시적 사유를 다시 묻는 이 책은, 서정을 사랑하는 독자에게도, 서정에 답답함을 느껴 온 독자에게도 “다른 길의 서정”을 상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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