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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가 은폐로 바뀌는 순간, 『친밀한 가해자』(손현주, 우리학교)
비상계단의 사고 이후 열여섯 소년이 마주한 책임의 질문
출판사 제공
폐쇄회로 텔레비전도, 목격자도 없는 아파트 비상계단. 사소한 말다툼이 한 사람의 혼수 상태로 이어지는 순간, 믿고 싶은 건 하나다. 아무도 보지 못했으니 지나갈 수 있다는 착각. 손현주 작가의 청소년 미스터리 소설 『친밀한 가해자』는 그 착각이 무너지는 자리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사고가 끝이 아니라, 그 뒤에 이어지는 선택들이 더 큰 파국을 부른다는 사실을 숨 가쁘게 따라간다.
주인공 준형은 부족함 없이 살아온 듯 보이는 열여섯 살이다. 넓고 환한 집, 성적, 친구 관계까지 깔끔하게 정돈된 일상. 그러나 비상계단에서 벌어진 사건 이후, 그 일상은 한 겹씩 벗겨진다. 안전하던 집은 숨 막히는 공간으로 변하고, 믿었던 관계는 의심과 계산을 품기 시작한다. 준형을 둘러싼 사람들은 저마다 ‘지키기 위해’ 움직이지만, 그 보호는 곧 다른 누군가를 밀어내는 힘이 된다. 친밀함이야말로 가장 완강한 장막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소설은 정면으로 드러낸다.
손현주 작가는 그동안 『가짜 모범생』에서 교육의 폭력성을, 『울지 않는 열다섯은 없다』에서 학교 현실의 균열을 날카롭게 포착해 왔다. 이번 신작은 한 사람이 어떻게 가해자가 되는지, 그 과정이 얼마나 평범한 일상에서 시작되는지로 시선을 옮긴다. 가해자를 뉴스 속 낯선 얼굴로 밀어내지 않고, 매일 마주치는 이웃과 친구, 가족의 얼굴로 끌어당긴다. 독자는 피해자와 가해자를 단순히 갈라 세우기 어려운 회색 지대를 지나게 된다.
소설의 추진력은 미스터리의 속도감에서 나온다. 사건의 진실을 좇는 흐름 위로 죄책감, 두려움, 체면, 보호 본능이 겹쳐지며 인물들은 흔들린다. “너라면 어떻게 할 것 같냐”는 준형의 질문은 이야기 속 대사이면서, 읽는 이의 가슴을 직접 겨누는 문장이다. 악의가 없었다고 말하는 순간에도 책임은 남는가, 가까운 이를 지키려는 마음은 어디까지 용납되는가, 침묵과 방관은 어떤 폭력이 되는가. 답을 강요하지 않는 대신, 독자의 양심을 끝까지 흔들어 놓는다.
『친밀한 가해자』는 청소년 소설의 범주를 넘어, 관계와 책임을 다시 정의하게 하는 작품이다. 사고 이후의 삶을 어떻게 통과할지, 그 선택의 무게를 끝까지 놓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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