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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은 ‘찍고 떠나는 곳’이 아니라 ‘머무는 공간’이었다, 『서원에 간 해설사』(정병철, 바른북스)
세계유산 등재 이후 달라진 풍경 속에서 서원을 다시 걷는 방식
출판사 제공
서원이 세계유산에 이름을 올린 뒤, 발길은 분명 늘었다. 그런데 풍경은 어딘가 낯설다. 정문에서 단체사진을 남기고, 현판 몇 장 훑은 뒤, 다음 목적지로 이동한다. 『서원에 간 해설사』는 그 익숙한 관람 패턴에서 출발해 “서원을 목적지가 아니라 머무는 곳으로 바꿀 수 없을까”라는 질문을 끝까지 밀어붙인 책이다.
저자 정병철은 궁궐 해설사로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온 인물이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간단하지만 집요하다. 3년에 걸쳐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9개 서원을 직접 걷고, 새벽과 해 질 녘의 빛까지 붙잡아가며 ‘공간이 어떻게 사람을 움직이는지’를 몸으로 읽었다. 때로는 드론 촬영까지 동원해 서원의 배치와 시선의 흐름을 확인하고, 관람객이 실제로 밟게 되는 동선을 따라 감상 포인트를 촘촘히 짚는다. 서원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빠져나갈 때까지, 어디에서 멈추고 어디를 바라봐야 하는지 ‘현장 언어’로 안내하는 구성이 눈에 띈다.
이 책이 택한 방향은 인물 열전이나 연대기식 역사 설명이 아니다. 제향 인물이나 서원의 약사를 길게 늘어놓기보다, 대청에 앉아 바람을 받아보는 순간, 담장 너머로 잘려 들어오는 풍경, 대칭 같지만 미세하게 어긋난 건물의 균형 같은 ‘현장에서만 보이는 감각’을 전면에 세운다. 건축의 엄격함 속에 숨어 있는 해학, 그리고 서원이 자연을 끌어오는 방식도 이런 서술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구성은 두 갈래다. 먼저 ‘여행 채비’ 파트에서 서원의 기본 구조, 제향 문화, 운영 방식, 인쇄와 책판 같은 배경을 정리해 독자가 현장에서 길을 잃지 않게 돕는다. 이어 본문에서는 소수서원, 도산서원, 병산서원 등 9개 서원을 동부·남부·서부로 나눠 따라간다. 각 서원마다 “여기서 무엇을 보고, 어떻게 즐길 것인가”가 중심에 놓인다. 가족이나 연인이 두어 시간 서원 안에서 머물며 쉬어갈 수 있도록 설계된, 말하자면 ‘서원 체류형 안내서’다.
『서원에 간 해설사』는 서원을 ‘알아야 하는 유산’에서 ‘앉아 있게 되는 장소’로 바꿔 놓으려 한다. 빨리 지나가는 여행에 익숙한 시대일수록, 이 책이 제안하는 속도는 오히려 선명하다. 서원을 다녀왔는데도 남는 게 없었다면, 문제는 서원이 아니라 우리가 서원을 소비하는 방식이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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