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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진 자리에서 문장이 먼저 흔들린다, 『손톱이 자라는 속도』 출간(허은희, 청색종이)
결여를 감정이 아니라 몸의 기능으로 읽어내는 한국시
출판사 제공
이 시집은 “상처를 치유한다”는 말부터 의심한다. 허은희는 결여를 우울의 이름으로 붙잡지 않고, 결여가 어떻게 언어의 구조가 되고 신체의 습관이 되는지 끝까지 따라간다. 빠진 발음과 어긋난 호흡, 설명되지 않는 공백이 무력의 표시로 멈추지 않고, 말의 방향을 바꾸는 압력으로 작동한다.
첫 시에서부터 세계는 온전한 단어로 굴러가지 않는다. “없는 것들은 서로 닮은 구멍이 있어”라는 문장이 보여주듯, 비어 있는 곳은 숨기고 덮을 대상이 아니라 서로를 알아보게 만드는 형태로 남는다. 그래서 이 시집의 말하기는 정리나 해명이 아니라,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해 몸이 반사적으로 내뱉는 움직임에 가깝다. 문장이 휘청거릴수록 화자의 존재감은 또렷해진다.
관계 또한 따뜻한 교감으로 수습되지 않는다. 여기서 관계는 화해의 장면이 아니라 실패가 반복되는 구조로 배치된다.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자주 엇나가고, 닮음은 친밀의 근거가 아니라 오해의 출발점이 된다. 한 사람의 결여가 다른 사람의 결여를 건드리며, 말은 자주 엇박으로 도착한다.
이미지들은 그 엇박을 더 선명하게 만든다. 손톱, 약물, 병동, 체벌 같은 단어들이 안정의 표지로 쓰이지 않고, 파편화된 상태를 드러내는 도구로 놓인다. 손톱은 몸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얇은 도구다. 자라고, 갈리고, 씹히고, 누군가를 할퀸다. 시집의 제목은 그래서 시간의 은유가 아니라, 상처가 갱신되는 주기를 가리키는 말처럼 읽힌다. “그건 가짜에 떨고 있다는 고백이란다” 같은 문장이 불쑥 튀어나올 때, 독자는 위로가 아니라 정확한 진술을 받는다.
『손톱이 자라는 속도』는 완성된 문장으로 독자를 안심시키지 않는다. 대신 불완전한 말들이 부딪히고 흩어지는 순간을 기록하며, 그 과정 자체가 삶의 형태임을 보여준다. 읽고 나면 남는 건 해석의 결론이 아니라, 내 안의 빈자리를 다루는 방식이 조금 바뀐 감각이다. 덮기보다 들여다보고, 고치기보다 관찰하는 쪽으로 시선이 옮겨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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