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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사각』 출간(이지원, 곳간)

납작한 하루에 면을 세우는 연필 소리

장세환2025년 12월 30일 오전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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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사각.jpg출판사 제공

가족과 역할에 눌린 하루는 쉽게 납작해진다. 그 납작한 시간에 ‘나’라는 면을 다시 세우는 방법을 이지원은 연필 끝에서 찾는다. 곳간이 에세이 『사각사각』을 내놓았다. 합천에서 글방 ‘사각’을 꾸려온 저자가, 아무도 보지 않는 듯한 삶의 자리에서 읽고 쓰며 자신을 되찾는 과정을 기록했다.

『사각사각』은 시댁이 있는 지리산 자락 방앗간의 묵직한 노동, 아이들과 함께하는 소란스러운 글방, 홀로 남는 부엌 식탁의 고요를 번갈아 비춘다. 화려한 결심 대신, 작은 살림의 결을 따라가며 마음이 닳고 거칠어지는 순간을 정직하게 붙잡는다. 저자는 “반짝이는 것보다 닳고 거친 것”에 오래 손을 얹고 싶다고 말하며, 매끈한 앞면이 아닌 잎사귀의 뒷면처럼 까슬까슬한 감정의 촉감을 글로 옮긴다.

책에서 ‘사각사각’은 단순한 의성어가 아니다. 애벌레가 잎을 갉아먹는 소리이면서, 연필이 종이를 스치는 소리다. 하루를 갉아 먹듯 살아내는 동안, 마음도 함께 깎인다. 그 과정은 상처를 과장하지도, 극복을 성급히 선언하지도 않는다. 대신 허술한 나를 버티게 하는 생활의 기술을 보여준다. 크리스마스가 반짝이지 않는 집, 울지 못하는 아이의 얼굴, 게으름을 죄로 만들지 않으려는 집안일의 리듬 같은 장면이 천천히 쌓인다.

특히 저자는 ‘좋은 딸’ ‘현명한 아내’ ‘헌신적인 엄마’ 같은 이름표가 덮어버린 자신을 다시 찾는다. 때로는 딸의 성적표 앞에서, 때로는 두 집 살림의 틈에서, “허술하고 나른하고 완벽하지 않은 엄마”로 서는 법을 배운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에게는 느슨한 다정함을 건넨다. “울지 못했던 아이”의 시간을 다루는 대목에서는 돌봄이 훈계가 아니라 기다림이라는 사실이 또렷해진다.

이 책은 교육서나 성공담이 아니라, 글쓰기가 어떻게 생활의 구조를 바꾸는지 보여주는 생활 기록에 가깝다. ‘사각’이 ‘생각할 사(思)’와 ‘깨달을 각(覺)’을 품듯, 저자의 문장도 생각과 깨달음 사이를 오간다. 매끄럽게 정리된 문장보다 덜 다듬어진 문장을 더 믿는 태도는, 독자에게도 “머물 수 있는 곳은 뒷면”이라는 감각을 남긴다.

『사각사각』은 곳간 ‘맨손문고’ 시리즈로 출간됐다. 작고 가벼운 책이지만, 그 안에는 하루를 버티는 사람이 스스로를 다시 세우는 소리가 또렷하게 들어 있다. 책이 남기는 건 거창한 위로가 아니라, 오늘도 다시 연필을 깎게 만드는 작은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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