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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듣고 오래 남기는 이야기의 힘, 『이야기를 그리는 사람』 출간(산드라 시에멘스·아만다 미항고스, 나무의말)

멕시카 기록자 틀라쿠일로를 그린 세계문화 그림책

장세환2025년 12월 19일 오후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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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그리는 사람.jpg출판사 제공

이야기는 쓰는 것이 아니라 지켜서 남기는 것이라고 말하는 그림책이 나왔다. 나무의말이 선보인 『이야기를 그리는 사람』은 멕시카 문명에서 그림과 상징으로 역사와 신화를 기록하던 틀라쿠일로의 세계를 한 아이의 시선으로 따라가는 작품이다. 2021년 뉴욕공립도서관이 선정한 올해의 어린이책 목록에 올랐고, CICLA 천보추이 국제아동문학상 후보에 이름을 올리며 작품성과 예술성을 인정받았다. 빠르게 소비되는 이야기들 속에서 기록과 기억의 의미를 되묻는 그림책이다.

책의 화자는 틀라쿠일로인 아버지를 바라보는 아이이다. 아이는 매일 아버지 곁에 앉아 선과 색, 기호가 모여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 과정을 눈앞에서 지켜본다. 아버지는 좋은 틀라쿠일로가 되려면 그림을 그릴 종이부터 알아보고, 서둘러 적기보다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오래 품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아이는 그 말을 따라 귀를 기울이고 마음에 담는 연습을 하며, 기록이 한 사람의 일이 아니라 공동체의 기억을 남기는 일이라는 사실을 배워 간다.

책은 틀라쿠일로의 작업을 통해 글자가 보편화되기 전, 그림으로 지식을 남기던 시대의 기록 문화를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오래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과 용기, 슬픔과 기쁨이 그림 속 기호로 이어지고, 그 기록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까지 도착하는 과정을 아이의 눈높이에서 풀어낸다. 이야기를 그리는 아버지 덕분에 아이는 “우리가 누구였고 어떻게 살았는지”를 다음 세대에 전하고 싶다는 꿈을 품게 되며, 책이 과거와 미래를 잇는 보물이라는 메시지가 잔잔하게 전해진다.

그림은 이 책의 또 다른 언어다. 멕시코 고대 문양과 상징에서 영감을 받은 일러스트레이션은 강렬한 색채와 조형적인 구성을 앞세워 한 장 한 장을 하나의 기록이자 예술 작품처럼 꾸민다. 글을 읽지 않아도 그림만으로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도록 설계해, 독자가 그림을 ‘해독’하며 의미를 찾아가는 시각 문해력을 자연스럽게 키운다. 아이에게는 상상력을, 어른에게는 세계문화에 대한 호기심과 깊이를 동시에 자극하는 구성이다.

40쪽 분량의 양장본으로 제작된 『이야기를 그리는 사람』은 유아부터 초등 저학년까지 두루 읽을 수 있는 그림책이다. 아르헨티나 출신 작가 산드라 시에멘스의 시적인 문장과 멕시코 일러스트레이터 아만다 미항고스의 그림, 여기에 문주선 번역가의 매끄러운 우리말이 더해져 남미와 멕시코 문화, 기록과 이야기의 전통을 한 권에 담아냈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너무 빨리 소비하는 시대에, 이 책은 아이와 어른 모두에게 “이야기는 어떻게 기억되고, 누구 덕분에 남아 있는가”라는 질문을 다시 던지며 천천히 읽고 오래 품고 싶은 그림책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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