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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으로만 자신이 되던 사람, 『라흐마니노프, 피아노의 빛을 따라』 출간(피오나 매덕스, 위즈덤하우스)

망명자 라흐마니노프의 삶과 음악을 따라가는 깊이 있는 전기

장세환2025년 12월 16일 오후 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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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흐마니노프.jpg출판사 제공

피아노 협주곡을 말할 때 빠지지 않는 이름, 그러나 정작 삶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작곡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를 정면에서 다룬 전기가 나왔다. 영국의 클래식 음악 평론가 피오나 매덕스가 쓴 『라흐마니노프, 피아노의 빛을 따라』가 위즈덤하우스에서 출간됐다. “나는 음악에서만 나 자신이 됩니다”라고 고백했던 한 예술가가 제국의 몰락과 혁명, 망명과 성공을 거치며 어떻게 자신만의 음을 지켜냈는지를 따라가는 책이다. 작곡가의 이름은 익숙하지만, 그의 러시아 탈출 이후 삶을 알고 싶은 독자에게 새로운 길잡이가 된다.

저자는 케임브리지와 왕립 음악대학에서 문학과 음악을 함께 공부한 클래식 비평가로, 세계 각지에 흩어진 서신과 기사, 음반 자료를 모으고 라흐마니노프 후손과 지인들의 증언을 교차 검증하며 책을 완성했다. 기존 전기가 대체로 러시아 시절의 성공과 초기 대표작에 집중했다면, 이 책은 특히 1917년 혁명 이후 러시아를 떠난 뒤의 25년, 미국과 유럽 무대를 오가며 ‘피아니스트 라흐마니노프’로 살아야 했던 시간을 정교하게 복원한다. 독자는 모스크바 저택과 시골 영지 이바노프카를 떠나는 장면에서, 이미 한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순간을 목격하게 된다.

라흐마니노프는 망명 이후에도 작곡을 멈추지 않았다. 1100회가 넘는 연주 여행 속에서 그는 자신의 피아노 협주곡과 파가니니 랩소디를 끊임없이 손보며, 말년에는 “마지막 명멸하는 불꽃”이라 불렀던 『교향적 춤곡』을 완성했다. 책은 재즈와 흑인 음악, 색소폰과 같은 새로운 소리에 귀 기울이면서도, 스스로의 언어를 포기하지 않았던 과정을 따라간다. 한때 “감상적이고 구식이다”라는 평가를 받았던 그의 음악이 어떻게 오늘날 다시 사랑받는 레퍼토리가 되었는지도, 시대의 취향과 비평의 변화를 통해 차분히 짚는다.

단지 ‘위대한 작곡가’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라흐마니노프를 만나는 것도 이 책의 중요한 축이다. 가족과 동료 예술가들, 망명 예술가들을 돕던 후원자, 자동차를 사랑하고 정원을 손수 가꾸던 가장으로서의 모습이 균형 있게 그려진다.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작곡은 아무도 내 소리를 듣지 못한다고 느낄 때만 가능하다”고 말하던, 모순과 외로움을 안고 버텨낸 사람의 얼굴이 드러난다. 낯선 땅에서 자신의 뿌리를 지키려 했던 그의 삶은, 변화가 빠른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의 독자에게도 ‘어디에 서서 무엇을 지킬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라흐마니노프의 선율을 이미 좋아하는 독자든, 이제 막 클래식을 듣기 시작한 초보 애호가든, 이 책은 음악 뒤에 숨은 한 사람의 시간을 따라가며 곡을 다르게 듣게 만드는 ‘듣기 전의 안내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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