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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근대 한국 사회가 바라본 ‘통속’의 얼굴, 그 뒤에 숨은 문화 권력의 작동을 집요하게 추적한 개념사 연구서가 나왔다. 『통속의 계보학』은 20세기 이전부터 오늘날 K-컬처 시대에 이르기까지, ‘통속’이라는 말이 때로는 공통의 언어를, 또 때로는 저급하고 신파적인 취향을 가리키는 말로 쓰여온 과정을 세밀하게 복원한다. 고려대에서 문학과 비평사를 연구해온 강용훈 인천대 부교수가 저술했고, 돌베개가 ‘한국개념사총서 일상 편’의 한 권으로 펴냈다. 364쪽 분량으로, 한국 대중문화의 뿌리를 새로운 시각에서 이해하고 싶은 독자에게 의미 있는 길잡이가 된다.
책은 먼저 ‘통속’ 개념이 자리 잡는 근대의 출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장은 한자어 ‘속’이 품고 있는 ‘민중의 것’과 ‘천한 것’이라는 이중 의미를 짚으면서, 통속이 처음부터 가치의 긴장을 안고 등장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어 2장에서는 보통교육 제도의 확립, 문자 해독 능력의 확산과 함께 ‘통속강연’, ‘통속소설’ 같은 말이 신문과 잡지 속에서 본격적으로 사용되는 과정을 따라가며, 지식과 오락이 어떻게 ‘일반인’에게 번역되고 공급됐는지를 살핀다.
3장과 4장은 식민지 시기를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누어, 통속을 둘러싼 시선의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 식민통치가 심화되면서 통속은 한편으로는 근대 지식을 풀어 말하는 통로가 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검열과 통제의 대상이 된다. 사회운동 세력과 계몽주의자, 식민 권력이 각각 ‘대중’을 상정하며 통속을 전유하는 양상은, 같은 단어가 전혀 다른 정치적 색을 띨 수 있음을 보여준다. 1930년대 이후에는 신문연재 소설, 통속가요, 영화 등 ‘속 문화’가 상품으로 유통되면서 통속이 상식과 취향, 상업성의 접점에서 재구성되는 과정을 추적한다.
해방 이후의 통속은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든다. 5장과 6장은 전쟁과 분단, 군사정권을 거치며 ‘대중성’과 ‘통속성’이 점차 구분되는 장면을 포착한다. 한편에서는 저급하고 퇴폐적인 것으로 낙인찍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검열을 우회하고 현실의 욕망을 표현하는 통로로 기능하는 이중성이 두드러진다. 특히 4·19혁명 전후 신문연재소설을 읽는 독자와 거리로 나온 정치적 주체로서의 대중이 교차하는 순간을 통해, 통속이 정치성과도 결코 무관하지 않았음을 환기한다.
마지막 7장은 1980년대 이후 문화 민주화와 문화산업의 확장 속에서 ‘통속’이 어떻게 다시 호출되는지를 다룬다. 방송과 출판, 대중음악, 드라마, 오늘날의 K-컬처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계층과 집단이 즐기는 문화형식이 여전히 서열화되는 현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저자가 2024년 탄핵 집회 현장에서 아이돌 응원봉을 든 시민들이 대중음악을 함께 부르는 장면을 목격하며 원고를 다시 손질했다는 고백은, 통속을 둘러싼 연구가 현재 진행형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저자는 통속의 역사를 되짚는 일이 “자신이 즐기는 것과 다른 문화 형태를 쉽게 비하하는 태도”를 경계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저급한 것’으로 치부되곤 했던 통속의 자리에서, 실제로는 한국 근현대의 대중이 자신들의 언어와 감각을 만들어온 과정을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통속의 계보학』은 통속을 둘러싼 진동과 긴장을 통해 한국 문화사의 지형을 다시 그려보자는 제안이자, 대중문화의 다양성을 위계 없이 바라보려는 모든 시도에 단단한 이론적 발판이 되어 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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