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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대문 옆 1㎡ 쓰레기통부터 163만 평 매립지까지, 도시의 얼굴을 바꾸는 것은 결국 “버리는 일”이다. 건축가 김이홍이 신간 『폐기의 공간사』에서 우리가 외면해 온 폐기의 공간들을 전면에 불러낸다. 종량제 봉투 밖으로 나간 쓰레기가 어디로 흘러가 어떤 풍경을 만들고, 어떻게 다시 도시를 재편해 왔는지를 공간의 역사와 설계, 국내외 사례를 통해 추적하는 책이다.
1장은 쓰레기통, 쓰레기차, 더스트슈트, 분리수거장처럼 작고 익숙한 공간에서 출발해 하천과 하수도, 적환장, 재활용품 선별장, 소각장, 매립지로 시야를 넓힌다. 한때 도시의 하천이 생활 쓰레기와 오수를 떠맡던 “뒤켠”이었다는 사실, 난지도 같은 매립지가 생태공원으로 탈바꿈하기 전 어떤 시간들을 견뎌야 했는지, 소각장이 오염시설에서 에너지 인프라로 전환되기까지의 과정이 입체적으로 그려진다. 쓰레기가 도시에 생긴 여분이 아니라, 도시 시스템과 공간 구조를 끊임없이 새로 짜 온 유기체였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2장은 인포그래픽으로 폐기의 현실을 직시한다. 전국 폐기물 발생량과 1인당 생활폐기물 배출량, 재활용 비율, 소각·매립 비중, 시도별 처리 방식 차이, 서울의 적환장과 자원회수시설 분포, 폐기물 순환 과정이 한눈에 들어온다. “쓰레기의 행로는 비밀스럽다”는 문장처럼, 모두가 잠든 사이 이동하는 폐기물의 궤적을 숫자와 지도 위에 드러내며 우리가 얼마나 손쉽게 버리고 얼마나 무심하게 잊어버리는지 짚어낸다.
3장은 기피시설이던 공간이 도시의 랜드마크로 재탄생한 국내외 사례를 따라간다. 훈데르트바서가 입힌 화려한 외피로 당당한 도시 상징이 된 빈의 슈피텔라우 소각장, 지붕 위에 스키장과 등산로를 얹은 코펜하겐의 코펜힐, 쓰레기 벙커를 내려다보며 식사할 수 있는 무사시노 클린센터, 세계 최대 매립지를 공원으로 돌려주는 프레시킬스 프로젝트가 그 대표다. 난지도 하늘공원과 노을공원, 부천 소각장을 복합문화공간으로 바꾼 부천아트벙커B39, 대구수목원 등 한국 사례도 함께 보여 주며 “버려진 것들의 공간”이 도시 재생의 무대가 될 수 있음을 설득한다.
4장은 저자가 직접 설계한 폐페트병 리사이클링 공장 ‘아이엠팩토리’의 탄생기를 다룬다. 좁고 긴 공장 부지에서 비롯된 U자형 매스, 자연광을 끌어들이는 입면, 재개발 단지에서 옮겨온 나무로 만든 조경, 시민에게 열린 전시·교육·공연 공간이라는 기획까지, 공장을 “살아 숨 쉬는 뮤지엄”으로 만든 고민의 과정을 상세히 풀어낸다. 인공지능 자원회수 로봇이 폐기의 동선을 바꾸는 장면과 함께, 생산과 폐기 사이에 새로운 공공성을 심으려는 시도가 책의 문제의식을 현재형으로 연결한다.
김이홍은 쓰레기를 도시 밖으로 밀어내는 전략이 결국 소비와 폐기의 감각을 무디게 만들었다고 진단한다. 따라서 답은 “더 멀리 치우는 것”이 아니라, 자원순환시설을 도심과 일상의 안쪽으로 다시 끌어들이는 데 있다고 말한다. 폐기에서 생산으로, 시설에서 공간으로, 건물에서 지역으로 시선을 옮기자고 제안하는 이 책은 환경 인문서이자 동시대 건축가에게 주어진 윤리와 역할을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보이지 않던 폐기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우리가 사는 도시의 얼굴과 삶의 태도가 함께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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