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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구석기 고고학의 출발점을 다시 읽다, 『석장리 유적과 함께하는 고고학 여정』 출간(한창균·서인선·김수아, 혜안)
석장리 60년 발굴·연구 성과를 한 권에 담은 최초의 통합 정리서
출판사 제공
한국 구석기 고고학의 시작점인 공주 석장리 유적을 한 권으로 정리한 『석장리 유적과 함께하는 고고학 여정』이 출간됐다. 1964년 첫 발굴에서 확인된 주먹도끼와 흑요석 돌날 조각으로 “한반도에도 구석기 시대가 있었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뒤, 60년에 걸친 발굴·연구·보존·활용의 역사를 촘촘하게 되짚은 책이다. 장덕리·굴포리 발견으로 열린 가능성이 석장리에서 전환점을 맞았다는 점을 보여주며, 한국 고고학이 “없음에서 있음으로” 방향을 튼 순간을 입체적으로 복원한다.
집필에는 연세대학교 사학과 출신 선사고고학자 한창균을 중심으로, 연세대학교박물관과 석장리박물관에서 현장을 지켜 온 학예사 서인선, 김수아가 함께했다. 세 사람은 연세대 손보기 조사단이 남긴 발굴 일지, 유물 대장, 실측도, 사진 대장 등 1차 기록을 다시 꺼내 읽고,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던 방사성탄소 연대측정과 꽃가루 분석 도입 과정을 복원한다. 석장리 유적이 단순한 “옛날 유적지”가 아니라 한국 구석기 연구 방법론과 용어, 연구 문화의 출발점이었다는 사실을 오늘의 언어로 다시 보여준다.
책은 먼저 1960년대 석장리 1차 발굴의 현장 분위기를 살려낸다. 장비와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학생과 연구자가 손으로 흙을 퍼 올리며 지층을 따라 내려가던 모습, 밤을 새워 유물을 분류하고 기록하던 풍경이 고고학 ‘개척기’의 숨결을 전한다. 1969년 석장리 6지층에서 채집된 숯이 국내 최초로 방사성탄소 연대를 얻어낸 과정은, 자연과학 분석을 본격 도입한 장면으로 소개된다.
이어지는 장에서는 석장리 유적에서 정리된 ‘깬석기, 격지, 돌날’ 같은 용어가 한국 구석기 고고학의 공용어로 자리 잡는 과정을 짚는다. 한국사 통사류와 검정 국사 교과서에 석장리가 어떻게 실려 왔는지, “석장리=한국 구석기 고고학의 상징”이라는 인식이 형성되기까지의 사회·학술적 배경도 함께 다룬다. 연구실 안의 논의뿐 아니라 언론 보도, 사적 지정, 시민 인식 변화까지 한 흐름으로 엮어 고고학과 사회의 연결 지점을 보여준다.
이 책이 특히 강조하는 대목은 ‘기록’의 힘이다. 발굴 현장에서 생산된 공문서, 사진, 실측도, 발굴 일지와 유물 대장은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가 커지는 ‘미래의 자료’라는 점을 구체적인 사례로 일깨운다. 1~10차 발굴 사진을 묶은 화보, 당시 신문 기사와 공문서를 모은 부록은 석장리 연구자는 물론 기록 관리와 박물관 업무를 고민하는 이들에게도 실질적인 참고가 된다.
현재 진행형인 석장리의 모습도 놓치지 않는다. 1990년 사적으로 지정된 이후 석장리박물관 개관, ‘세계구석기공원’ 조성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따라가며, 구석기 유적이 과거의 흔적을 넘어 미래의 교육·연구·관광 자원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소개한다. 금강변 야외 전시와 체험 프로그램, 국제 학술 교류를 통해 석장리가 국내를 넘어 세계 구석기 연구의 거점으로 자리 잡아 가는 장면도 함께 담았다.
『석장리 유적과 함께하는 고고학 여정』은 구석기 고고학 전공자에게는 필수 참고서이자, 한국 선사시대 입문을 고민하는 일반 독자에게도 믿고 펼 수 있는 안내서다.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시간의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그 질문 앞에서 석장리는 오늘도 조용하지만 단단한 목소리로 답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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