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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 마지막까지 삶을 사랑한 현자의 고백 『아흔에 바라본 삶』 출간(찰스 핸디, 인플루엔셜)

죽음을 앞둔 세계적 경영사상가가 전하는 노년과 삶의 태도

장세환2025년 12월 12일 오후 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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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에 바라본 삶.jpg출판사 제공

세계적인 경영사상가이자 ‘포트폴리오 인생’의 저자로 잘 알려진 찰스 핸디의 유작 『아흔에 바라본 삶』이 출간됐다. 2024년 말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2년에 걸쳐 병상에서 집필한 이 책은 인생의 끝에서 돌아본 삶의 의미와 나이 듦의 가치를 담은 인문 에세이다. 저자는 “아침마다 눈을 뜨면 오늘도 멋진 날이라고 외친다”고 말하며, 노년을 두려움이 아니라 축복으로 맞이하는 법을 차분하게 들려준다. 화려한 이력 뒤에 숨은 한 인간의 기쁨과 불안, 선택과 후회, 그리고 마지막까지 이어진 호기심이 책 전반을 관통한다.

핸디는 글로벌 석유기업 셸 임원, 런던경영대학원 교수, 영국왕립예술학회 회장 등을 지낸, 이른바 ‘성공한 인생’의 표본으로 평가되어 왔다. 그러나 『아흔에 바라본 삶』에서 그는 직함과 성취보다 자신이 진짜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예의 바르고 괜찮은 사람으로 자란 두 자녀”라고 고백한다. 경영 석학의 언어 대신 한 인간이자 아버지로서의 솔직한 시선이 앞에 선다. 성공의 기준을 연봉과 지위가 아닌 사랑과 관계, 자신답게 사는 삶에 두자는 메시지는 불안한 미래를 걱정하는 세대에게도 단단한 기준점을 제시한다.

책은 다섯 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1장에서는 “잘못 탄 기차가 결국 올바른 목적지로 데려다줄 수 있다”는 통찰로 문을 연다. 안정된 대기업 임원 자리를 내려놓고 저자로 방향을 튼 자신의 경험을 예로 들며, 인생의 우회와 실패가 새로운 길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또한 “내 가장 좋은 친구는 나 자신”이라는 표현처럼, 스스로를 믿고 스스로에게 친절해야만 긴 삶을 버틸 수 있다고 말한다. 나이가 들수록 태도가 운명을 만든다는 점을 거듭 상기시킨다.

2장과 3장에서는 관계와 일을 다룬다. 핸디는 가족, 친구, 좋은 음식 이 세 가지를 늘 일보다 앞에 두었다고 고백한다. 그는 진짜 중요한 일을 스스로 정하지 못하면 끝없이 ‘긴급한 일’에 끌려다니는 삶이 된다고 경고한다. 일에 대해서도 “더 크게보다 더 좋게”를 선택하라고 조언한다. 조직의 목적은 소수의 성과가 아니라 타인의 이익과 성장을 돕는 데 있으며, 리더에게 필요한 것은 화려한 카리스마가 아니라 친절과 공정성이라고 짚는다. 실수할 자유, 스스로 선택할 여지를 허용하는 조직만이 사람을 키울 수 있다는 메시지도 눈에 띈다.

4장에서는 인생 후반부에 비로소 보이는 삶의 풍경이 펼쳐진다. 핸디는 어제의 경험이 내일의 정답이 될 수 없다고 말하며, “매일 아침은 나를 새로 만드는 기회”라고 적는다. 완벽함을 좇기보다 부족한 자신을 인정하고, 차이와 다름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결국 더 나은 결정을 이끈다고 본다. 행복의 조건도 복잡하지 않다. 해야 할 일이 있고, 진심으로 사랑할 사람들이 있으며, 멀리지만 기대해 볼 만한 희망이 하나라도 있다면 이미 행복의 문턱에 서 있다는 설명이다.

가장 큰 울림을 주는 부분은 마지막 5장이다. 핸디는 뇌졸중 이후 쓰러진 뒤에도 구술과 녹음을 통해 글을 이어가며, 피할 수 없는 죽음의 순간을 차분히 준비하는 과정을 기록한다. 일본의 금박 수리 기법 ‘킨츠기’를 떠올리며, 부서진 자리와 흉터가 오히려 인간을 더 흥미롭게 만든다고 말한다. 세상이 우리를 여러 번 부서뜨리더라도, 그 틈으로 들어온 빛과 배움을 통해 더 단단해질 수 있다는 노년의 지혜다. 그는 “해야 할 일은 다 마쳤다”고 고백하며, 남은 시간을 두려움이 아닌 감사로 채우겠다고 적는다.

『아흔에 바라본 삶』은 나이 듦이 곧 상실과 추락을 의미한다는 통념을 가볍게 비켜선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스스로에게 솔직해지고,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세우며, 사랑과 배움의 폭을 넓힐 수 있다고 말하는 책이다. 피할 수 없는 시간을 앞둔 한 노학자의 담담한 목소리는, 오늘 하루를 버티고 있는 모든 세대에게 “그래도 이 삶은 아직 충분히 살아볼 만하다”는 조용한 확신을 건넨다.

끝을 준비하는 법을 먼저 배운 사람만이 오늘을 더 가볍고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아흔의 기록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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