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상세

newbooks

혼란의 시대, 일상의 틀이 나를 지킨다 『단단한 삶은 보통의 날들로 이루어진다』 출간(펄 카츠, 북다)

루틴과 리추얼로 불안과 상실을 견디는 법

장세환2025년 12월 8일 오후 1:02
1,147

단단한 삶은 보통의 날들로 이루어진다.jpg출판사 제공

일상이 가장 불안할 때 사람들은 이상하리만치 평범한 행동을 반복한다. 죽음의 소식을 들은 가족이 부엌에 내려가 차를 끓이고, 지구 멸망을 앞둔 영화 속 인물들이 아이를 목욕시키고 저녁상을 차리는 장면처럼 말이다. 존스홉킨스 의대 정신과 교수이자 인류학자인 펄 카츠의 신간 『단단한 삶은 보통의 날들로 이루어진다』는 이런 익숙한 장면에서 출발해 루틴과 의례가 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지탱하는지 파고든다. 혼란과 상실의 시대에 결국 우리를 붙잡아 주는 것은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하루를 지탱하는 작은 틀이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저자는 유대인 이민자 2세로 자라며 다수 문화의 리추얼에 끼지 못했던 경험에서 출발해, 의사이자 인류학자로서 40년 가까이 생로병사와 리추얼의 관계를 연구해 왔다. 핼러윈과 크리스마스에 소외감을 느끼던 어린 시절, 사회의 관습을 따라 하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심리적 자유를 되찾았다는 경험은 이 책의 문제의식을 이룬다. 카츠는 “틀은 우리를 속박하는 장치가 아니라 예측 가능성을 제공해 마음을 자유롭게 하는 구조”라며, 반복되는 생활 리듬이 생각과 감정의 에너지를 아껴 진짜 중요한 것에 쓸 수 있게 만든다고 설명한다.

책은 총 4부 구성이다. 1부에서는 출근 시간, 식사 순서, 회의 방식 같은 사소한 일상 규칙이 어떻게 나와 타인의 경계를 그려 주는지, 정해진 형식이 있을 때 사람들의 불안이 얼마나 빠르게 가라앉는지를 다양한 사례로 보여준다. 예식 절차가 하나도 준비되지 않은 야외 결혼식장에서 하객들이 우왕좌왕하다가, 주례가 등장해 의식을 진행하는 순간 표정이 편안해지는 장면은 “형식이 곧 안도감”이라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저자는 리추얼이 갈등을 예방하고 오해를 줄이는 일종의 사회적 안전장치라고 말한다.

2부에서는 가족, 질병, 죽음 등 인생의 큰 전환점에 집중한다. 가족 중 누군가가 아프거나 만성 질환을 앓게 될 때, 집안의 식사 시간과 소소한 주말 루틴을 의식적으로 지키는 것이 구성원들에게 얼마나 큰 버팀목이 되는지 여러 연구를 통해 보여준다. 장례 의례를 제대로 치르지 못한 유가족들이 상실을 오래 끌어안는 사례, 코로나 시기 최소한의 장례도 허용되지 않았던 이들이 겪은 복합 애도의 문제는 슬픔을 받아들이는 데 의례가 왜 필수적인지를 설득력 있게 증언한다. “장례식이 없으면 애도할 심리적 자유도 없다”는 구절이 특히 눈에 남는다.

3부는 리추얼이 사라진 자리에서 벌어지는 혼란을 다룬다. 일과 휴식의 경계가 흐려진 재택근무 시대, 언제든 울리는 업무 알림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저자는 “경계를 과장해서라도 다시 긋는 의식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집에 들어오면 휴대전화를 꺼 두는 시간, 특정 요일에는 업무 메신저를 확인하지 않는 규칙을 스스로 정해 실행하는 것만으로도 과도한 업무 침범을 제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애와 만남의 문화에서 계산은 누가 할지, 관계의 단계는 어떻게 확인할지 등을 둘러싼 당혹스러움 역시 리추얼이 사라지고 새로운 규칙이 아직 자리 잡지 못한 과도기 현상으로 읽어 낸다.

4부에서는 리추얼과 창의성의 관계를 조명한다. 저자는 과학자와 예술가, 운동선수들의 루틴을 분석하며 “반복은 상상력을 억누르는 족쇄가 아니라 도약을 가능하게 하는 발판”이라고 강조한다. 일정한 시간에 연구실 문을 여는 습관, 경기 전 늘 같은 동작으로 몸을 푸는 의식이 몸과 마음을 준비시키고, 그 틀 위에서 새로운 생각과 성취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카츠는 죽은 관습과 살아 있는 루틴을 구분할 기준으로, “삶을 풍요롭게 하는 구조인지, 단지 두려움을 감추려 붙잡고 있는 껍질인지 스스로 물어볼 것”을 제안한다.

책은 한국 독자에게도 낯설지 않은 사례들을 곁들여 리추얼의 힘을 설명한다. 재난과 팬데믹 이후 일상이 무너졌다고 느끼는 이들, 돌봄과 장례의 경험에서 충분한 의례를 치르지 못해 마음에 빚을 안고 있는 이들에게 특히 큰 울림을 줄 만하다. 2025년 12월 12일 출간된 『단단한 삶은 보통의 날들로 이루어진다』는 불확실성이 일상이 된 지금, 이 책은 삶을 화려하게 바꾸는 비법 대신 오늘 하루의 작은 루틴을 다시 세우는 일이야말로 스스로를 지키는 가장 단단한 방법이라고 조용히 일러 준다.

관련 기사

글로벌 사우스의 중심, 『인도에서 기회를 만나다』 출간 (신시열, 이콘)

글로벌 사우스의 중심, 『인도에서 기회를 만나다』 출간 (신시열, 이콘)

6월 10일 오후 3:56
8
몸은 스스로 치유한다, 『자가 수리점』 출간 (헨리 비일러, 사이몬북스)

몸은 스스로 치유한다, 『자가 수리점』 출간 (헨리 비일러, 사이몬북스)

6월 10일 오후 3:52
11
사라지는 손목, 남는 체온 ― 『솜사탕 증후군』 (박윤일, 파란)

사라지는 손목, 남는 체온 ― 『솜사탕 증후군』 (박윤일, 파란)

6월 10일 오후 3:45
8

댓글 (0)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