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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사관의 그늘을 걷어내다, 『날조한 역사, 지워진 진실들』 출간(김영진, 북랩)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가 드러낸 왜곡된 가야사, 시민 역사학자가 짚은 조작의 흔적
출판사 제공
가야 고분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과정에서 발견된 한 줄의 지명이 한 시민을 역사 현장으로 불러냈다. 남원을 ‘기문국’, 합천을 ‘다라국’으로 표기한 등재 신청 문서를 계기로, 김영진 전국역사단체협의회 공동대표는 박물관 전시 기록과 지방사 편찬물, 행정 문서 곳곳에 남은 식민사관의 잔영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날조한 역사, 지워진 진실들』은 일제 조선사편수회가 설계한 역사 프레임과 이를 답습한 ‘역사 매국 사학’의 논리를 유물과 1차 사료로 비판하며, 가야국의 실제 모습을 복원하려는 여정을 담은 책이다. 저자는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 일이야말로 미래 세대를 지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라고 말하며, 시민이 나선 역사 바로 세우기의 의미를 되묻는다.
책은 먼저 “역사는 승자가 기록한다”는 오래된 명제를 오늘의 한국사 교육에 비춰 본다. 일제가 조선총독부 직속 조선사편수회를 통해 단군조선을 서간도와 서해 일부의 작은 소국으로 축소하고, 낙동강 유역의 가야를 ‘임나 제국’으로 바꾸어 일본 고대 국가의 속국으로 둔갑시킨 과정을 짚는다. 저자는 이러한 서술이 해방 이후에도 학계와 교과서, 행정 용어 속에 남아 대한민국의 역사관을 옭아매고 있다고 지적하며, “대한민국 역사관이 독립되어야 진정한 광복에 이른다”는 문제의식을 책 전반에 걸쳐 제기한다.
이어지는 장에서는 식민사관이 그늘로 밀어 넣었던 가야의 실체를 유물과 유적으로 복원한다. 낙동강 유역 전역을 아우른 가야 세력권, 김수로 대왕으로 대표되는 가락국의 건국 전통, 낙동강 동안과 내륙에 걸쳐 꽃피운 독창적인 철 제련과 토기 제작 기술이 구체적인 고고학 자료와 함께 소개된다. 김해 대성동, 함안 말이산, 고령 지산동, 합천 옥전, 남원 운봉 유곡리·두락리 고분군에 이르기까지, 흙과 쇠로 세운 가야 문명의 예술성과 독창성은 문헌보다 먼저 말을 건네는 증거로 제시된다. “가야국 역사는 문헌보다 유물과 유적이 먼저 말을 건네는 나라”라는 대목은, 기록에서 소외된 역사를 물질 문화로 복원해야 한다는 책의 관점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가야 고분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과정은 이 책의 또 다른 축이다. 2021년 국가유산청이 세계유산센터에 제출한 등재 신청서에는 『일본서기』를 근거로 한 ‘합천 다라국’, ‘남원 기문국’이라는 정치체 명칭이 버젓이 들어 있었다. 저자는 이를 일제 식민사학과 일본 극우의 논리를 그대로 반영한 용어 사용이라고 비판하며, 『일본서기』 신공왕후기와 임나일본부설의 신빙성을 조목조목 따진다. 신공왕후의 실체, 임나의 위치, 『삼국사기』와 「양직공도」, 『한원』의 관련 기록을 교차 검토해 “실존하지 않은 지명을 근거로 세계유산을 설명할 수 없다”는 논리를 구축하고, 시민 역사단체들과 함께 등재 문서 수정 운동을 이어 갔다. 그 과정은 부록에 연표와 함께 자세히 정리되어 있다.
이러한 문제 제기는 2023년 9월 17일 중요한 결실을 맺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합천 다라국’과 ‘남원 기문국’이라는 명칭을 공식 삭제하고, ‘쌍책 지역 가야 정치체’와 ‘운봉고원 가야 정치체’로 수정할 것을 결정한 것이다. 저자는 이 결정을 “100년 넘게 이어진 식민사관의 족쇄를 끊는 선언”으로 평가하면서도, 세계유산 등재 이후 국내 박물관 전시와 지방사, 교과서를 어떻게 고쳐 나갈 것인가 하는 과제를 남겨 두었다고 강조한다.
책은 가야가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K-한류 문화유산’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이름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국립김해박물관과 합천박물관 전시물의 사례를 들어, ‘금관가야’ 대신 ‘가락국’, 검증되지 않은 일본식 지명을 그대로 차용한 설명문 등을 하나씩 짚어 내며 바른 용어와 설명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세계유산의 가치는 관람객 수나 관광 수입이 아니라 ‘진실성에 기반한 올바른 역사 전승’에 있다는 점을 거듭 상기시키며, 지역 관광과 한류 콘텐츠 역시 정확한 역사 인식 위에서만 지속 가능한 힘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마지막 장 ‘시사 역사 상식’에서는 식민사관과 관련된 쟁점들을 짧은 글로 정리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금관가야’가 아닌 ‘가락국’이라는 표기 문제, 한사군 낙랑군의 실제 위치 논쟁, 허황옥 신화의 해석, 『삼국유사』 「가락국기」가 전하는 5가야·1왕 5주 체계, 임나일본부설을 유물·유적으로 반박한 연구 성과, 요하 문명과 정한론을 연결한 일제 논리 등이 사례로 제시된다. 저자는 일제 강점기부터 이어진 식민사학 관련 석·박사 논문 목록까지 덧붙이며, 왜곡된 지식을 ‘전문가의 학설’로 포장해 온 구조에 경종을 울린다.
양장본 302쪽 분량의 『날조한 역사, 지워진 진실들』은 가야사에 관심 있는 독자는 물론, 세계유산과 역사 교육, 식민사관 논쟁을 둘러싼 오늘의 쟁점을 정리해 보고 싶은 일반 독자에게도 의미 있는 참고서가 될 만한 책이다. 저자가 현장에서 체감한 문제의식과 치열한 논증은 “우리가 배운 역사는 과연 우리의 역사였는가”라는 질문을 다시 꺼내 들게 하며, 지워진 진실을 되찾는 일이 곧 미래를 향한 책임이라는 사실을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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