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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들의 숨겨진 한 장면을 여는 미술 에세이, 『숨겨진 영혼의 미술관』 출간(김원형, 지콜론북)
대표작의 그늘에 가려졌던 낯선 걸작으로 화가 18인의 내면을 비추다
출판사 제공
우리가 아는 뭉크는 늘 절규하고, 고흐는 해바라기만 그리고, 클림트는 황금빛 키스만 하는 화가처럼 기억된다. 새로 출간된 미술 에세이 『숨겨진 영혼의 미술관』은 이런 단선적인 이미지를 걷어 내고, 명성 뒤에 가려진 낯선 그림들로 거장들의 진짜 얼굴을 비추는 책이다.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미술사 연구자이자 큐레이터 김원형 작가는, 교과서에 실린 대표작이 말하지 못한 화가들의 삶과 상처, 기쁨과 회복의 순간을 덜 알려진 작품들을 통해 천천히 안내한다. 18명의 거장을 5개 전시실로 나누어 구성한 이 책은, 한 권의 두꺼운 미술관을 걷는 듯한 읽기를 제안한다.
책은 먼저 ‘순간의 방’에서 모네, 고흐, 마네, 드가의 캔버스를 펼친다. 파리 루브르 발코니에서 내려다본 19세기 도시 풍경, 프로방스 햇살 속 랑글루아 다리 주변의 소박한 일상, 해변 마을로 숨어들어 한적한 바다를 바라보는 마네의 시선 등은 우리가 익숙하게 떠올리는 ‘명화의 이미지’와는 조금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작가는 경마장과 말에 사로잡힌 드가의 시선을 따라가며, 화려한 도시 문화의 욕망과 열광을 동시에 포착한 장면 속에 당시 사회의 공기를 읽어낸다. 극적인 사건 대신 평범한 거리, 다리, 바다를 집요하게 응시한 그림들을 통해, 예술의 주제가 더 이상 ‘고상한 사건’일 필요가 없었던 시대의 감각을 짚어낸다.
‘어둠의 방’과 ‘치유의 방’은 이 책의 정서를 가장 깊게 밀어 올리는 공간이다. 날카로운 선으로 뒤틀린 도시를 그린 에곤 실레, 전쟁과 질병의 시대를 통과하며 ‘검은 그림’을 남긴 고야, 노동자와 어머니의 고통을 끌어안은 케테 콜비츠의 작품은 시대의 폭력과 개인의 불안을 동시에 응시한다. 이어지는 장에서는 죽음과 공포의 화가로만 알려진 뭉크가 말년에 그린 찬란한 태양, 평생 육체적 고통을 안고 살았던 프리다 칼로가 마지막까지 그려낸 생동하는 과실의 정물화, 다보스의 빛과 산을 통해 절망을 넘어가려 했던 키르히너의 그림을 통해 예술이 어떻게 상처를 넘어 생명으로 나아가는지를 보여준다. 그림은 벽에 걸린 장식이 아니라, 한 인간이 무너지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온몸으로 밀어 올린 기록이라는 작가의 문장이 이 관을 관통한다.
‘탐구의 방’에서는 루소, 벨라스케스, 세잔, 터너가 등장한다. 꿈과 현실이 뒤섞인 루소의 마법적 정글, 왕과 귀족이 아닌 비천한 물장수에게 품위를 부여한 젊은 날의 벨라스케스, 자 드 부팡 저택의 연못과 정원을 통해 자연을 원통·구·원뿔로 바라보려 했던 세잔의 실험, 빛과 안개 속에 베네치아를 녹여낸 터너의 풍경은 “회화란 무엇을, 어떻게 그리는 일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서로 다른 대답처럼 읽힌다. 작가는 잘 알려진 대표작이 아닌 이 전환기의 작품들을 중심에 놓고, 거장들이 ‘양식’이 아닌 ‘본질’을 향해 나아가던 순간을 짚어낸다.
마지막 ‘교감의 방’은 르누아르, 프리드리히, 마티스, 클림트의 보다 사적인 그림을 소개한다. 르누아르가 류머티즘으로 손이 굳어가는 말년, 아내 알린이 정성스럽게 꽃을 꽂아 놓으면 자신은 그 꽃다발을 옮겨 그렸다는 일화와 함께 작은 꽃 정물화가 소개된다. 마티스가 딸 마르그리트를 위해 색채의 폭력성을 눌러 담담하게 그린 초상은, 야수파의 화려함 뒤에 숨은 부성애를 드러낸다. 금박과 키스로 유명한 클림트가 여름마다 호숫가로 내려가 사람 하나 없는 숲과 물, 하늘만을 그려낸 풍경화는 화려한 도시 예술가에게도 고요한 안식처가 필요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숨겨진 영혼의 미술관』은 5개의 상징적인 전시실을 따라가며 거장들의 삶과 작업을 짧은 에피소드, 역사적 맥락, 미술사적 해석을 곁들여 풀어낸다. 예술·미술이야기 분야로 분류된 이 책은 미술관을 자주 찾는 관람객뿐 아니라 명화에 익숙하지만 화가 자체가 궁금해진 독자에게, “한 장의 명작으로는 결코 다 담을 수 없는 예술가의 영혼”을 들여다보는 새로운 입구가 되어 준다.
‘절규’와 ‘해바라기’와 ‘키스’ 뒤편에 숨겨져 있던 그림들을 마주하는 순간,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었던 명화의 얼굴은 더 깊고 따뜻한 온도로 다시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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