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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신화 넘어 협업의 과학을 말하다, 『보통 과학자』 출간(김우재, 김영사)
엘리트 중심 과학사를 다시 쓰는 ‘보통 과학자’의 시대
출판사 제공
과학은 소수의 천재가 이끄는 특별한 세계일까, 아니면 수많은 연구자들이 서로 기대어 버티는 거대한 협동조합일까. 초파리·꿀벌 행동유전학자로 알려진 김우재 연구자가 신간 『보통 과학자』에서 이 질문에 정면으로 답한다. 저자는 근대 과학의 성립부터 현대의 세분화된 연구 환경까지 살피며, 과학의 진보가 사실은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보통 과학자의 협업과 네트워크 위에서 이루어져 왔다고 말한다. 동시에 연구비 편중과 엘리트 중심 구조에 갇힌 과학계의 현실을 날카롭게 짚으며, 보통 과학자가 존중받는 연구 생태계를 향한 구체적인 길을 제시한다.
책은 총 4부로 구성된다. 1부에서는 핵산 연구와 노벨상 수상 사례를 통해 과학자 사회에 깊이 새겨진 ‘영웅 서사’와 마태효과를 비판한다. 상위 10퍼센트 엘리트 과학자가 연구비의 상당수를 가져가는 구조, 여성 과학자와 주변부 국가 연구자들이 겪는 차별과 유리천장을 이야기하며, “능력주의”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된 불평등의 민낯을 드러낸다. 저자는 과학사회학 연구와 데이터를 근거로 “개천에서 용이 나기 어려운 과학계”의 현실을 설명하고, 젊은 연구자들에게 과도한 경쟁과 연구비 공황이 어떤 식으로 전가되는지 구체적인 사례로 보여준다.
2부에서는 과학을 지탱해온 숨은 주역들을 앞자리로 끌어 올린다. 중국 출신 생화학자 루구이전, 인간 염색체 수 46개를 밝혀낸 조 힌 치오, 페니실린 실용화를 위해 묵묵히 연구에 매달린 플로리와 체인, 로버트 보일 실험실과 현대 연구실을 떠받치는 기술자와 테크니션 등 이름이 잘 드러나지 않았던 과학자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실험 도구를 설계하고, 재료를 개량하고, 데이터의 신뢰도를 좌우하지만 논문 저자로 이름을 올리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는 과학이 거대한 오케스트라에 가깝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보이지 않는 기술자”의 존재를 복원하는 과정은 과학사를 넓히는 동시에, 오늘 우리 연구 현장의 현실을 돌아보게 만든다.
3부에서는 시선을 한국 과학계 안으로 돌린다. 비정규직 연구자, 대학원생, 박사후연구원 등 이른바 ‘보통 과학자’가 마주한 일자리 위기와 평가 제도의 문제를 거침없이 다룬다. 논문 편수와 영향력 지수에 과도하게 매달리는 평가 문화, 몇몇 대형 연구실로 쏠리는 연구비, 학문적 성취와 무관하게 재정·출신 배경에 좌우되는 기회 불평등이 “맬서스의 비극”처럼 작동하고 있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저자는 연구비를 소수에게 집중하기보다 기본연구비를 도입해 더 많은 연구자에게 안정적인 최소 자원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상적인 연구실 규모와 지속 가능한 연구 환경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를 함께 제시한다.
4부에서는 ‘과학의 과학(SOS, Science of Science)’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과학 출판과 지식 공유의 미래를 그린다. 공동 연구의 효과, 작은 규모 연구의 장점, 프리프린트와 오픈액세스 확산이 가져온 변화, 거대 학술출판사의 구조적 문제 등을 차분히 짚으며 “과학 지식을 공동의 자원, 커먼즈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논문을 과학자의 유일한 화폐로 삼는 관행에서 벗어나, 협업과 공유에 기반한 새로운 평가와 출판 시스템으로 옮겨가야 한다는 제안은 정책과 현장을 함께 고민해야 할 과제로 남는다.
『보통 과학자』는 과학자를 막연한 천재나 괴짜가 아니라, 한 사회를 구성하는 평범한 직업인으로 다시 자리매김한다. 저자는 “노벨상을 받는 과학자는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과학을 실제로 움직이는 것은 연구실에서 묵묵히 실험을 이어가는 보통 과학자들”이라고 말하며, 이들의 자부심과 행복이 보장될 때 비로소 과학도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천재 신화의 그늘에 가려졌던 과학의 실제 얼굴을 보여주는 이 책은, 과학계 내부는 물론 연구 정책과 과학의 미래를 고민하는 독자들에게도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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