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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가 대신 생각하는 시대, 인간지능의 역할은 무엇인가, 『인간지능의 역사』 출간(이은수, 문학동네)
고대 그리스에서 챗GPT까지, 인간 지성이 걸어온 길을 다시 짚다
출판사 제공
인공지능이 일상을 뒤흔드는 지금, 인간만의 지적 능력은 무엇으로 남을까. 서울대학교 철학과 교수이자 서울대 AI연구원 인공지능 디지털인문학센터장 이은수의 신간 『인간지능의 역사』가 문학동네에서 나왔다. 저자는 고대 그리스부터 현대 AI까지 수천 년에 걸친 지성사를 따라가며, 인간지능의 핵심이 단순한 정보 처리 능력이 아니라 ‘의미를 만들고 책임지는 힘’에 있다고 짚는다. 인공지능을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적 사고의 확장된 파트너”로 바라보자는 제안도 책 전반을 관통한다.
책은 인간이 지식을 다루는 네 가지 기본 행위, 발견‧수집‧읽고 쓰기‧소통에 주목한다. 아르키메데스가 “유레카”를 외치던 순간에서 망원경과 현미경, 그리고 오늘의 AI까지 이어지는 발견의 역사를 통해, 저자는 기술이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는 도구라면 그 장면에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하는 주체는 여전히 인간이라고 강조한다.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는 최신 AI 연구 사례를 소개하면서, “답을 찾는 일보다 답을 찾게 하는 시스템을 설계하는 능력”이 인공지능 시대 인간지능의 중요한 임무라고 설명한다.
지식을 모으는 방식의 변화도 흥미롭게 그려진다. 알렉산드리아도서관에서 르네상스의 필사본 사냥, 근대 백과사전과 오늘의 위키피디아까지, 인류는 언제나 ‘지식을 잃지 않기 위해’ 수집의 기술을 발전시켜왔다. 하지만 디지털 환경과 AI가 만들어낸 것은 ‘지식의 부족’이 아니라 ‘지식의 과잉’이다. 저자는 알고리즘이 골라주는 결과에만 기대기보다, 각자 “디지털 정원”을 가꾸듯 자기만의 지식 체계를 구성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방대한 정보 속에서 무엇을 믿고, 어디에 시간을 쓸지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이야말로 인간지능의 새로운 핵심이라는 것이다.
읽기와 쓰기의 역사는 곧 인간 사고방식의 변천사다. 점토판과 두루마리, 코덱스와 인쇄술을 거쳐 디지털 텍스트와 생성형 AI에 이르기까지, 기록 기술이 바뀔 때마다 우리는 혼란과 저항, 적응과 내재화를 반복해 왔다. 이제 AI는 번역·요약·초안 작성까지 도와주지만, 저자는 “결국 무엇을 읽고 무엇을 쓴 것으로 내 삶을 이해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인간이 스스로 붙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인공지능으로 쓴 글이라도 그 글을 선택하고, 고쳐 읽고, 책임지는 존재가 인간이라면, 그 과정 전체가 곧 인간지능의 무대라는 해석이다.
소통의 장면에서도 고대 그리스 아고라의 논쟁, 중세 수도원의 필사와 서신, 근대 ‘편지공화국’을 아우르며 오늘의 디지털 광장과 대조한다. 속도와 편리함은 높아졌지만, 공감과 진실성, 책임이 빠진 대화가 얼마나 쉽게 혐오와 분열로 치닫는지도 함께 짚는다. 저자는 “AI와 나누는 대화가 정말로 우정이 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지며, 이해와 공감, 윤리적 판단을 포함한 소통의 깊이는 여전히 인간이 훈련해야 할 영역이라고 강조한다.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지식 생산의 방식을 다시 묻는다. AI가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새로운 패턴과 답을 생성하는 시대에는, 한 사람의 독창성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는 ‘천재’ 모델보다 분야와 세대를 넘나드는 집단 지성이 중요해진다. 동시에 AI가 만든 결과물의 진위와 책임 소재는 더 모호해진다. 이 책은 이러한 난제를 피해 가지 않고, “인간은 체화하고, 관계 맺고, 책임지는 존재”라는 정의를 제시한다. 불완전하고 느리기 때문에 오히려 질문을 멈추지 않는 능력이 인간지능의 마지막 쓸모라고, 저자는 단정하지 않으면서도 단호하게 말한다.
이 책은 인공지능을 둘러싼 막연한 불안에서 한발 물러나, 인간과 기술이 함께 진화해 온 긴 역사를 차분히 되짚어 보게 한다. 기계가 대신 생각하는 시대라도 인간이 해야 할 생각과,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생각이 무엇인지 궁금한 독자에게, 『인간지능의 역사』는 묵직한 기준점을 건네는 인문학 교양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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