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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다”와 “살고 싶다” 사이에서 쓴 기록 『정원에 묻은 것을 파내야 한다』 출간(사이토 미에, 다다서재)
자폐·ADHD·섭식장애를 살아낸 한 여성의 내면 고백
출판사 제공
열네 살에 급성 골수성 백혈병을 겪고, 성인이 된 뒤에는 자폐스펙트럼과 ADHD, 섭식장애, 반복되는 자살 충동과 적응장애로 살아온 일본 작가 사이토 미에의 고백록 『정원에 묻은 것을 파내야 한다』가 다다서재에서 출간됐다. 1부에서는 정신과 폐쇄병동 입원, 백혈병 치료, 섭식장애, 자폐스펙트럼 자각 과정까지 자신의 병력과 증상을 담담히 되짚고, 2부에서는 논픽션과 픽션의 경계를 넘나들며 “왜 나는 이렇게까지 죽고 싶은가”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백혈병 완치 이후에도 일상을 “계속되는 말년”처럼 살아온 한 사람이, 여전히 죽고 싶다는 마음을 품은 채 세계와 다시 연결되기 위해 써 내려간 기록이다.
책의 첫 장면은 일상과 죽음이 맞붙어 있는 순간에서 시작한다. 여름방학 동안 세 아이의 저녁을 준비하던 저자는 설명 없이 밧줄을 가져와 스스로 목을 매려 한다. 이 자살 시도를 계기로 정신과 폐쇄병동에 행정 입원한 뒤, 그는 병동에서 겪은 시간을 “내 영혼이 여러 번 살해당한 경험”이라고 부른다. “나는 죽지 않았지만, 몇 번이나 영혼이 살해당했다고 생각한다”는 문장은, 겉으로는 무사해 보이는 치료와 관리의 이면에서 당사자가 느끼는 상실과 공포를 날것 그대로 포착한다.
사이토 미에는 자신의 상태를 “개인이 겪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의 문제와 얽혀 있는 것”으로 규정한다. 자폐스펙트럼 특성 때문에 사람의 말이 외국어처럼 들리고, 청각 과민으로 필요한 말과 주변 소리를 구분하지 못하며, 사람마다 고유한 ‘색’이 보이는 감각을 어릴 때부터 견뎌야 했다. 여기에 소아암 생존자라는 낙인, 여성으로서 돌봄을 당연시하는 문화, 환자의 몸을 관리의 대상으로만 보는 의료 시스템이 겹쳐지면서, 저자는 “살기 위해 정원에 묻어두었던 것들”을 평생 끌어안고 살아왔다고 고백한다.
이 책의 제목처럼, 저자가 시도하는 일은 자신이 묻어 둔 것들을 하나씩 파내는 작업이다. 2부에서 그는 쓸쓸함, 자살 충동, 사과와 용서, 시간, 접촉 같은 키워드를 중심으로 에세이와 상상, 짧은 이야기 형식을 오가며 내면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잘못과 죄를 정하는 것은 행위를 한 사람이 아니라 그 행위를 당한 사람 아닐까”라는 질문은, 사과받지 못한 상처가 어떻게 평생의 자기 혐오와 죽음 충동으로 이어지는지 드러낸다. 동시에 “타인과 함께 있는 것이라는 문장 속에는 반드시 내가 필요하다”는 깨달음은, 완전한 회복이 아니라도 자신을 되찾기 위한 작은 다짐으로 작용한다.
『정원에 묻은 것을 파내야 한다』는 투병 성공기나 극적인 회복담이 아니다. 저자는 여전히 하루에도 여러 번 “죽고 싶다”는 발작을 겪지만, 그 와중에도 “아름다운 것을 보며 마음이 움직이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마음이 닿았다고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죽고 싶은 마음과 살아 있다는 감각, 두 감정이 동시에 존재하는 모순을 있는 그대로 인정함으로써, 이 책은 정신질환과 자살 충동을 단순한 극단의 선택이 아니라 “살려고 버티는 방식”의 한 단면으로 보여준다.
역자 김영현은 일본어 원문 특유의 건조하면서도 미세한 결을 살려 한국어로 옮겼다. 240쪽 분량의 이 책은 사회문제·정신건강·여성문화와 외국 에세이를 가로지르는 교차 장르로 자리 잡으며, 자살 충동이나 우울, 발달장애를 겪는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 동료, 현장에서 만나는 실무자들에게도 “당사자의 감각으로 세계를 보는 법”을 경험하게 하는 자료가 될 만하다.
출판 정보는 다음과 같다. 쪽수 240쪽, 판형 128×188밀리미터, ISBN 9791191716436. 국내도서 사회문제·정신질환·여성문화·외국에세이 분야로 분류된다. 저자는 “내 글을 통해 다른 사람들도 내가 경험하는 세계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히며,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이들이 각자의 정원에서 묻어 둔 것을 조금씩 꺼내 보기를 조심스레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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