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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다시 바라볼 때 비로소 치유가 시작된다” 『말라가의 밤』 출간(조수경, 한겨레출판)

자살로 가족을 잃은 생존자의 밤, 상실을 통과해 삶으로 돌아가는 이야기

장세환2025년 11월 28일 오후 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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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가의 밤.jpg출판사 제공

가족의 죽음과 사회의 어두운 지점을 예리하게 파헤쳐 온 소설가 조수경이 신작 장편소설 『말라가의 밤』으로 돌아왔다. 안락사 합법화 근미래를 그린 『아침을 볼 때마다 당신을 떠올릴 거야』, 아동학대 사건을 다룬 『그들이 사라진 뒤에』에 이어, 이번에는 자살로 가족을 잃은 뒤 홀로 남겨진 한 사람의 시간을 응시한다. 한겨레출판에서 펴낸 이 소설은 가족의 연쇄적 죽음 이후 방황하던 화물 트럭 기사 형우가, 죽음의 문턱에서 ‘말라가’라는 기묘한 해변에 도착해 자신의 과거와 마주하는 여정을 그린다.

형우는 엄마와 동생이 세상을 떠난 지 10주기가 되던 날 더는 견디지 못하고 절벽에서 몸을 던진다. 그러나 끝이라고 여겼던 순간, 눈을 뜬 곳은 휴양지를 닮은 해변 말라가다. 그곳에서 형우는 아홉 살, 열아홉 살, 스물아홉 살의 자신을 차례로 만나 과거의 장면들을 다시 걷는다. 젊은 엄마와 어린 동생과 함께했던 단란한 시절, 아빠의 죽음에 의문을 품던 동생의 표정, 바쁜 직장 생활에 떠밀려 가족의 SOS를 흘려보냈던 순간까지, 형우는 그동안 “눈치채지 못한 채 조금씩 무너져 온” 날들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세월을 훌쩍 건너뛴 자리에서야 비로소 보이는 진실과 후회, 여전히 남아 있는 애정이 이야기의 중심 축을 이룬다.

소설 속 말라가는 죽음과 삶의 경계이자, 생존자가 슬픔의 구조를 재구성하는 공간이다. 형우는 “죽기 전에 살아온 날들이 필름처럼 스쳐 간다”는 말을 떠올리며, 그 장면들 속에서 지금의 자신을 살릴 단서를 찾는다. 소설은 슬픔을 회피하지 않고 끝까지 들여다보는 일이 어떻게 치유의 출발점이 되는지 보여 주며, 상처를 개인의 실패가 아닌 사회적 관계망 속 한 부분으로 다시 사유하게 한다. 정이현 소설가는 이 작품에 대해 “생존자의 삶을 향해 내미는 진심 어린 작은 손”이라 평하며, 좋은 소설의 목적이 위로보다 이해에 있음을 상기시킨다.

현실로 돌아온 형우의 시간도 인상적이다. 그는 자신처럼 자살로 가족을 떠나보낸 이들과 함께 프리다이빙을 배우며 물속으로 잠수한다. 숨을 참는 행위는 극단적 선택과 닮아 보이지만, 사실은 “결국 수면으로 올라와 회복 호흡을 하기 위한” 과정이다. 서로의 손이 닿는 거리에서 버디와 짝을 이루어 함께 내려갔다가, 함께 올라와 숨을 쉬는 장면은, 마음이 무너지는 순간에도 타인과의 연대를 통해 다시 숨을 들이마실 수 있음을 상징한다. 작가는 “살다가 숨이 쉬어지지 않는 날에는 당신이 당신을 꼭 안아주면 좋겠다”는 말을 남기며, 우울과 슬픔의 강한 에너지를 스스로의 생을 지키는 힘으로 전환하자고 제안한다.

『말라가의 밤』은 자살 사별자를 둘러싼 죄책감, 분노, 무력감을 서사 속으로 끌어들여, “왜 그랬을까”로 수축되던 질문들을 “어떻게 함께 살아갈까”라는 질문으로 옮겨 놓는다. 죽음을 미화하거나 단순한 극적 장치로 소비하지 않으면서, 남겨진 이들의 감정을 사실적으로 포착해 긴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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