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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가 지워진 세상에서 나를 찾아가는 여정", 안트예 라비크 슈트루벨 저 『푸른 여자』 출간(PADO북스)

2021년 독일 도서상 수상작, 성폭력 트라우마와 치유의 신화적 서사

장세환2025년 9월 18일 오후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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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여자.jpg출판사 제공

독일 문학계에서 큰 주목을 받은 작품이 국내에 소개됐다. 2021년 독일 도서상을 수상하며 평단과 독자의 압도적 찬사를 받은 안트예 라비크 슈트루벨의 장편소설 『푸른 여자』가 PADO북스에서 출간됐다.

이 소설은 성폭력으로 '내면의 망명' 상태에 빠진 한 여성의 위태로운 여정을 추적한다. 동시에 개인의 상처가 동시대 유럽의 지정학적 균열 속에서 어떻게 발화되고 침묵되는지 집요하게 파고든다.

체코의 작은 마을 출신 아디나가 주인공이다. 더 넓은 세상을 꿈꾸며 독일에서 인턴십을 시작했지만, 한 유력 인사에게 당한 폭력으로 모든 것이 송두리째 흔들린다. 누구도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자 아디나는 스스로를 지운 채 핀란드 헬싱키로 도망친다.

헬싱키에서 다정한 지식인 레오니데스의 보살핌을 받지만, 자신의 경험을 설명할 언어를 잃어버린 그녀는 과거에 갇힌 채 더 깊은 고독으로 빠져들 뿐이다.

소설의 가장 독특한 지점은 '푸른 여자'라는 신화적 인물의 등장이다. 소설은 아디나의 현실을 따라가다 예고 없이 '푸른 여자'의 신비로운 이야기와 독자를 마주하게 한다. 두 개의 소설이 동시에 진행되는 듯한 이 구조는 작품의 백미로 꼽힌다.

꿈과 현실의 경계에 선 '푸른 여자'는 아디나가 겪은 고통의 기억 그 자체이자, 그녀가 차마 내뱉지 못하는 목소리를 대신하는 또 다른 자아다. 작가는 이 신화적 장치를 통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트라우마의 속성을 완벽하게 그려낸다.

"리오의 친구들에게는 그런 얘기도 할 수 있다. 다른 데서는 할 수 없는 얘기지만 리오에서는 괜찮다." 소설 속 주인공은 온라인 공간에서만 자신의 진실을 털어놓을 수 있는 현대인의 고독을 보여준다.

작가의 정교하고 시적인 문장도 인상적이다. "밖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몇 시간 혹은 며칠이 지났을 수도 있고, 고작 몇 분이 흘렀는지도 모른다." 트라우마 상황에서 왜곡되는 시간 감각을 섬세하게 포착했다.

이 작품이 8년의 시간을 들여 완성된 이유는 지극히 내밀한 개인의 여정을 동시대 유럽의 보이지 않는 권력과 조우시켰기 때문이다. 동유럽과 서유럽, 남성과 여성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긴장 속에서 한 개인의 투쟁이 어떻게 시대의 초상이 되는지를 증명한다.

안트예 라비크 슈트루벨은 1974년 독일 포츠담에서 태어났다. 포츠담과 뉴욕에서 문학을 공부했으며, 그리니치 빌리지의 소극장에서 조명 기사로 일했던 독특한 경험을 첫 소설 『열린 조리개』에 녹여내며 작가로 데뷔했다.

번역은 독일 문학 전문 번역가 이지윤이 맡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를 졸업하고 프레시안 정치부 기자로 일한 후 독일 풀다대학교에서 다문화 의사소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트라우마의 본질을 작품 구조로써 탐구한 대담하고 성공적인 문학적 시도로 평가받는 이 작품은 침묵당한 목소리를 길어 올리는 현대 문학의 중요한 성취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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