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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의 결말을 다시 쓰다 『비극을 비추는 거울을 부수고』(앨릭스 E. 해로우, 황소연 옮김, 든)

백설 공주 속 ‘사악한 여왕’에게 이름과 미래를 돌려주는 퀴어 생존 판타지

장세환•2026년 9월 29일 오후 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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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을 비추는 거울을 부수고.jpg출판사 제공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2026년 휴고상과 로커스상을 수상한 앨릭스 E. 해로우가 신작 『비극을 비추는 거울을 부수고』를 선보였다. 전작 『저주를 잣는 물레를 부수고』가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다시 쓰며 공주에게 자신의 삶을 선택할 기회를 돌려주었다면, 이번 작품은 ‘백설 공주’ 속에서 패배하고 죽어야 했던 ‘사악한 여왕’의 자리에 시선을 옮긴다.

주인공 지니아는 차원을 넘나들며 공주들을 구해온 여행자다. 어느 날 거울 속에서 낯선 여자를 발견한 그는 또 다른 공주를 구하게 되리라 생각하지만,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는 ‘사악한 여왕’이었다. 이름조차 없이 악역으로만 기억되던 여왕은 자신의 결말이 동화책에 이미 쓰여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야기에서 탈출하기 위해 지니아를 끌어들인다. 지니아는 그에게 ‘이바’라는 이름을 붙여주며, 두 사람은 거울을 통과해 수많은 ‘백설 공주’의 세계를 지나게 된다.

해로우는 오랜 시간 반복되고 변형되어온 ‘백설 공주’를 멀티버스로 확장한다. 공주와 여왕, 사냥꾼과 난쟁이의 모습은 세계마다 달라지지만, 이야기는 언제나 공주의 행복을 위해 누군가에게 악역을 맡긴다. 그러나 이바는 깨닫는다. “사악한 여왕”은 이야기 속 역할일 뿐, 자신의 전부는 아니라고. 그는 살아남기 위해 힘을 원했을 뿐이며, 이제는 결말을 스스로 선택하고자 한다.

거울은 더 이상 아름다움을 비교하는 도구가 아니다. 해로우의 이야기에서 거울은 서로 다른 세계와 두 여자를 연결하는 통로로 바뀐다. 지니아와 이바는 서로를 통해 자신과 닮은 욕망을 발견하고, 단순한 연대나 동일시를 넘어 성애적 끌림으로 이어진다. “결말을 피하는 일만 생각하던 두 사람에게 살아남은 뒤에도 함께하고 싶다는 욕망을 만들어내는 힘”이 바로 이 책의 핵심이다.

『비극을 비추는 거울을 부수고』는 단순히 악역을 새로운 주인공으로 교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름 없는 주변 인물에게도 삶과 목소리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동화의 규칙 자체를 흔든다. 해로우는 주인공의 행복을 위해 주변 인물의 삶을 지워온 동화의 비합리를 드러내고, “내 미래는 바로 나의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커커스 리뷰는 이 책을 “한 번에 읽어치우기에 완벽한, 생기 넘치고 매력적인 동화 다시 쓰기”라 평했고, 퍼블리셔스 위클리는 “시리즈의 팬과 비틀린 동화를 사랑하는 독자 모두에게 충분한 즐거움을 준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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