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7km, 28박 29일, 78만 걸음. 미국 시에라네바다산맥을 가로지르는 존 뮤어 트레일에서 최창규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물었다. 왜 편안한 삶을 두고 굳이 고단한 길을 선택했을까. 무엇을 얻기 위해 이토록 먼 길을 걷고 있을까. 안산의 대표적인 종합서점 대동서적을 이끌어 온 그가 남미와 히말라야, 미국의 대자연을 걸으며 기록한 여행 에세이 『길은 나를 비우고 다시 채웠다』가 해토에서 출간됐다.
최창규는 1988년 안산에서 참고서 도매상을 시작했다. 이후 시민들의 문화적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종합서점 대동서적을 설립했고, 지역 독서문화 활성화에 힘써 왔다. 성실하게 일하며 서점을 일궜지만 어느 순간 설명하기 어려운 허전함이 찾아왔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오랫동안 미뤄두었던 질문을 품고 길을 나섰다.
여정은 남미에서 시작해 히말라야를 거쳐 존 뮤어 트레일로 이어졌다. 페루의 고대 문명과 볼리비아의 광활한 풍경, 파타고니아의 거센 바람 앞에서 인간의 존재를 돌아봤다.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에서는 찰나의 소중함을 배웠고, 랑탕에서는 동행의 의미를 깨달았다. 에베레스트로 향하는 고된 길에서는 인간의 한계와 자연 앞에서의 겸손을 경험했다.
존 뮤어 트레일은 가장 긴 사색의 무대였다. 18kg의 배낭을 짊어지고 험준한 고갯길을 넘으며 수없이 포기를 생각했다. 숨이 차고 다리가 무거워 한 걸음조차 내딛기 어려웠지만 다시 걸었다. 길을 잘못 들었을 때 돌아설 줄 아는 지혜, 속도를 늦춰야 비로소 보이는 풍경, 혼자서는 끝까지 걸을 수 없다는 사실을 몸으로 배웠다.
여행은 가족을 바라보는 시선도 바꿨다. 히말라야에서 아내와 함께한 경험을 통해 상대가 원하지 않는 배려가 오히려 상처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판단을 앞세웠던 순간을 돌아보며 상대의 두려움과 마음을 헤아리는 일의 중요성을 기록했다.
책에는 저자가 직접 촬영한 풍경 사진과 함께 각 여정에서 얻은 생각이 담겼다. 이문재 시인은 추천사에서 관광과 여행, 순례를 구분하며 최창규의 걷기를 영혼이 성장하는 순례의 여정으로 평가했다.
현재 대동서적 사동본점과 중앙점을 운영하는 최창규는 안산독서포럼, 독서아카데미, 심야책방 등 지역 독서문화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256쪽으로 구성된 이번 책에는 오랫동안 서점을 지켜 온 한 사람이 낯선 길 위에서 자신을 다시 발견하고, 돌아와 살아갈 이유를 새롭게 찾은 시간이 담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