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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을 넘어선 증언 『1992년 LA 폭동, 지붕 위의 한인들』(진구섭, 푸른역사)

분 단위 복원으로 되살린 ‘루프탑 코리안스’의 역사

장세환•2026년 9월 28일 오후 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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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위의 한인들.jpg출판사 제공

1992년 4월, 로스앤젤레스는 ‘20세기 미국 최악의 인종 폭동’이라 불리는 참극을 겪었다. 2,300곳 이상의 한인 업소가 불타거나 파괴되고, 4억 달러 이상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으며, 한인 1명이 사망하고 40명이 부상당했다. 그러나 LA시 당국이나 경찰은 지금까지 한인 사회에 공식적인 사과를 한 적이 없다. 진구섭 교수의 신간 『1992년 LA 폭동, 지붕 위의 한인들』은 이 사건을 왜곡과 망각에서 구해내려는 치밀한 기록이다.

저자는 4년 이상 방대한 자료를 섭렵해 당시 상황을 분 단위로 복원했다. 폭동의 원인과 진행 과정, 후일담을 꼼꼼히 정리하면서도 시점의 플래시백과 대화체 삽입을 활용해 ‘내러티브 논픽션’ 방식으로 서술해, 역사서이면서도 드라마처럼 읽히게 한다. 로드니 킹 사건과 두순자-라타샤 할린즈 사건, 무능했던 LA 경찰의 대응, 편향된 미국 언론의 보도까지 폭동의 전후 맥락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책은 또한 이민자들의 삶과 고민을 생생하게 담았다. 파독 광부 출신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좇아 미국에 온 홍씨 부부, 가발 붐으로 백만장자가 된 김시면, 교민의 도움 요청에 나섰다가 총격으로 사망한 이재성, 미국 언론의 편향에 맞선 엔젤라 오 변호사 등은 사건을 개인의 비극이자 공동체의 역사로 확장시킨다. 피해복구 성금 배분 갈등, 그리고 2016년 라타샤 할린즈 유족과 한인 사회 인사들의 만남까지 다루며, 폭동 이후의 긴 그림자까지 추적한다.

특히 ‘지붕 위의 한국인(Rooftop Koreans)’이라 불린 한인들의 무장 대응은 당시에는 비난받았지만, 이후 미국 보수 싱크탱크 헤리티지 파운데이션이 수정헌법 제2조의 자위권 발동 사례로 평가했다. “사실상 경찰에게 버림받은 상황에서, 많은 코리아타운 주민은 자신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권리에 의지했다”는 기록은 공동체가 스스로를 지켜낸 역사적 장면으로 남았다.

『1992년 LA 폭동, 지붕 위의 한인들』은 단순히 폭동의 원인을 묻는 책이 아니다. 그것은 LA 한인사회의 역사이며, 동시에 인종 갈등과 이민자의 생존, 공동체의 연대와 책임을 되묻는 기록이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지며, “역사는 곧 기억의 역사”라는 서두의 문장을 끝까지 밀고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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