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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속 아시아학, 급진의 꿈과 몰락 『비판의 종언』(파비오 란자, 글항아리)

1960년대 글로벌 마오주의와 미국 아시아학 연구자들의 급진적 궤적

장세환2026년 8월 24일 오후 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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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의 종언.jpg출판사 제공

1960년대 후반, 세계는 베트남 전쟁과 미국 대학가를 뒤흔든 학생운동, 그리고 중국의 문화대혁명이라는 격랑 속에 있었다. 이 시기 미국 학계 내부에서도 거대한 지각변동이 일어났는데, 그 중심에는 ‘우려하는 아시아학 연구자 위원회(CCAS, Committee of Concerned Asian Scholars)’가 있었다.

애리조나대학 역사학 및 동아시아 연구 교수 파비오 란자는 저서 『비판의 종언(The End of Concern)』에서 이 젊은 학자-운동가 집단의 궤적을 추적한다. 그는 기존 아시아 지역학(Area Studies)이 ‘가치중립적 학문’이라는 명목 아래 사실상 미국 냉전 정책의 공범 역할을 해왔음을 폭로한다. 존 페어뱅크를 비롯한 자유주의 학자들과 현대화론 학파는 연구와 자금, 권력 구조 속에서 미국 패권의 전략적 필요에 따라 아시아를 재단하는 도구로 기능했다는 것이다.

1968년 결성된 CCAS는 학문과 행동의 분리를 거부하며, 지식 생산 방식 자체를 혁명하려 했다. 이들에게 마오주의 중국은 단순한 연구 대상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근대성과 관료제화된 학계에 맞서는 대안적 사회 구성의 가능성이자 영감의 원천이었다. 문화대혁명 시기 지식인과 노동자의 위계가 흔들리고 민중이 역사의 주체로 부상하는 모습은 이들에게 깊은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 베트남 보트피플의 참상, 폴 포트 정권의 대량학살, 중국의 베트남 침공 등은 ‘인민 해방’을 내세운 아시아 공산주의 지도자들의 실상을 드러냈다. 마오 사후 중국 내부의 변화와 냉전 질서의 전환 속에서 CCAS의 급진적 긴장감은 희석되었고, 결국 1979년 해산에 이르렀다.

란자는 CCAS의 쇠락을 단순히 출세지상주의와 진정성주의의 대립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는 젊은 연구자들이 더 이상 인민의 주체성에 입각한 혁명 정치를 옹호하지 않기로 한 집단적 선택을 했다고 분석한다. 이는 학문과 정치의 접점에서 지식인들이 자기연민 속에 주체성을 상실한 과정이었다.

『비판의 종언』은 냉전기 미국 지성사의 가장 아프고도 찬란했던 반성의 기록이다. 학문과 권력이 어떻게 얽히는지, 그리고 학자가 사회적 불의와 폭력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를 묵직하게 묻는다. 오늘날 인문사회과학의 위기 속에서 이 책은 학문의 윤리와 정치적 책임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도발적인 지성사적 서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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